“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루카 12,41)
예수님의 가르침은 물론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능력에 따라서 그것을 더 많이 깨달을 수 있고 적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이 깨달은 이들에게는 더 많은 책임이 부여되고 적게 깨달은 이에게는 적은 책임이 부여됩니다.
그렇다면 적은 책임을 지기 위해서 적게 받아들이고 적게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많이 받아들이고 많이 깨달을수록 우리는 더욱 더 큰 충만함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것을 받아들일 능력이 충분히 있는데도 다만 우리의 게으름이 그것을 가로막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더 똑똑하고 어떤 사람은 덜 똑똑합니다. 어떤 사람은 육체적인 건강을 지니고 있고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장애를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차이들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똑똑한 사람이 말씀을 덜 받아들여 더 못된 사람일 때도 있고, 반대로 날 때 부터 장애를 지닌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묵상하면서 더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설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저마다에게 책임을 맡기실 것입니다. 그 책임은 ‘영혼들’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더 많은 영혼을, 누군가에게는 더 적은 영혼을, 그리고 누군가는 그저 제 영혼이라도 챙기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책임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해야 합니다. 사도들이 사도들인 이유는 더 많은 영혼을 맡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상의 고민에서 자유로운 한편 하느님에게 더 다가서야 하고 이웃들의 구령을 위해서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정신없이 바쁜 이들은 적어도 자기 영혼이라도 챙겨야 합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하느님을 잊지 않고 선을 잊지 않고 실천하고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훗날 셈을 하실 것입니다. 저마다의 역량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더 많이 맡기셨고 누군가에게는 덜 맡기신 분이 때가 이르면 셈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인의 뜻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은 잃었던 양을 찾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돈을 벌고 재산을 늘려 스스로 자족하고 살기를 바라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이들입니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루카 12,39-40)
모두 이 진리를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다가오셨을 때에 우리 영혼이 그 어떤 가치도 지니지 못한 채로 텅 빈 채로 남아있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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