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꾸준히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가 늘 소홀히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나 현대는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그러한 모든 것을 없는 듯이 치부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실제로 영이 없는 듯이 살아가지요.
하지만 전혀 다른 이면에 사람들은 엉뚱한 것을 찾아 헤매곤 합니다. 사주와 타로카드 그리고 인터넷 상에서 범람하고 있는 운세 맞추기 게임과 같은 것들은 우리가 아니라고 하면서 뒤로 호박씨를 까고 있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지요. 과학의 시대라고 그러한 것들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내면으로는 그러한 것들을 느끼고 찾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대해서도 언급하시고 또 악령에 대해서도 언급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아들이고 악령을 배척할 필요가 있다고 하시지요. 그리고 당신이 직접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기도 하고, 또 수많은 악령 들린 이를 구해 주시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 안에서 보이는 것들만 신경 쓰고 살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누군가가 선물이라고 값비싼 물건을 들고 오면 겉으로 보기에는 좋지만 그 속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속적인 사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남에게 좋은 것을 내어주는 일은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능력 안에서 할 만한 것들을 하고 누리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제에 맞지도 않는 것을 추구하다가는 반드시 큰 화를 입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런 재난은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내면의 시력의 키워서 영의 분별을 하기 시작하면 과연 어떤 영들을 받아들여야 마땅하고 어떤 영들은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은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단지 그 사람을 보기만 해도 내면에 흐르고 있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누구도 배척하지 않으셨지요. 다만 마지막 순간까지 도와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영들을 올바로 분별하고 있을까요? 아니,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내면에 존재하는 영의 종류도 올바로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자식이 온갖 패악질을 하면서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우리 애는 원래 착한 애야’라고 하는 어머니와 같은 모습입니다. 우리 내면에 분노와 증오, 악의와 거짓이 판을 치고 있는데 그것을 괜찮다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 내면의 영의 고삐를 채우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댓글
부끄러워지는 모습에 오늘도 보속하는맘으로
하루를 살겠습니다.
신부님 환절기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