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볼리비아의 지인으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마약을 하면서 점점 무너져가는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게 너무 힘든데 도무지 방법이 없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성당 가는 것도 그만두고 기도도 안하고 하느님을 믿는 것을 포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제가 떠오른 모양입니다. 다른 것들이 다 무너지는 중에 그나마 저라는 한국 사제가 떠오른 모양이지요.
다시 하느님에 대해서 상기 시켜야 했습니다. 저는 이제 볼리비아에 없고 등을 두드려 줄 수도 가서 아들을 만나 조언을 해 줄 수도 없습니다. 다만 기회가 닿는 대로 다시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상기시켜 줄 수 있을 뿐입니다. 희망을 잃지 않도록, 다시 마음을 돌이켜 하느님에게 돌아가고 내적인 힘을 길러 힘든 상황을 견뎌내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지요.
한국에서 누가 힘들다 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때가 있습니다. 누구의 고통이 더 큰가를 가늠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오렌지냐 사과냐를 두고 고민하는 것과, 먹을 것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고민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부모 가정, 교육의 부재, 마약, 알콜중독, 생존의 위협을 겪고 있는 곳의 현실은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농담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볼리비아보다는 여기가 낫지 않겠나?’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틀린 말입니다. 환경적으로는 맞는 말이고 영적으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볼리비아는 살아나가기에 힘든 여러가지 환경이 있지만 사람들이 하느님을 갈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환경적으로 훨씬 나은데도 사람들의 마음이 메말라 있습니다.
쓸데없는 가르침에 사로잡혀 시간을 허비하고, 엉뚱한 것들에 마음을 온전히 다 소진해 버리고… 그러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여기니 그런 이들에게 ‘철부지’와 같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그것을 시도해 본 사람이면 아는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고 저를 한국으로 돌아오게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왔고, 또 예상치 못한 일을 맡게 되었으니 이것이 순전히 인간의 복잡한 사고와 계획에서 나왔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복음을 전하러 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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