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을 지키는 것이 제물을 많이 바치는 것이고, 계명에 충실한 것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은혜를 갚는 것이 고운 곡식 제물을 바치는 것이고, 자선을 베푸는 것이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악을 멀리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고, 불의를 멀리하는 것이 속죄하는 것이다. (집회 35,1-5)
여전히 우리는 ‘제사’의 개념을 물리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는 몇 개를 얹어야 하고 십자가의 위치는 어디여야 하며 십자가는 사제를 보아야 하는가 신자를 보아야 하는가 하는 식의 요소들이지요.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꼼꼼하게 챙기려고 하고 그것이 어긋나면 큰일이라도 날 듯이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들은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물을 제 자리에 두는 것은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그러한 것들은 ‘돈이 넉넉한 이들’에게는 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이들은 그러한 것들을 챙길 여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제대로 된 기도상을 마련할 여유자금이나 공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집회서의 저자는 우리에게 ‘핵심’ 가르침을 전합니다. 정말 너무나 알짜배기라서 여러분들이 많이 많이 알아 두었으면 하는 가르침입니다.
집회서의 저자는 내적인 가치들로 드리는 진정한 제사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구약이 마치 옛 것인 양, 이제는 쓸모없는 가르침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집회서의 저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냅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제물을 많이 바치고 있으니 바로 ‘미사 예물’이나 ‘봉헌금’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제물은 그러한 외적 자산을 내다 바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여기서 ‘율법을 지킨다’는 의미는 올바로 새겨야 합니다. 그것은 법적 규정을 빠짐없이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신 것과 같이 우리는 율법의 본질, 즉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하지요. 그것이 우리가 율법을 올바로 지키는 길이고, 또한 그것이 우리가 제물을 올바로 바치는 방법입니다.
오늘날의 제사는 당연히 ‘미사’입니다. 십자가상의 거룩한 제사이지요. 하지만 그 제사를 올바로 바치기 위해서는 계명에 충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명에 충실하다는 의미는 앞서 설명한 것과 유사합니다. 그저 법적으로 규정된 말마디들을 충실히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의 올바른 방향성을 잘 따르라는 말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면서 용서의 가장 최고봉을 드러내는 미사에 나온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운 곡식 제물을 바치던 구약의 관습이 있으니 그것은 곧 내가 받은 은혜를 되갚는 행위를 말합니다. 우리가 감사의 예물을 봉헌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주일 헌금을 내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내어야 해서 억지로’ 내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릇된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방법은 성가를 어려운 방법으로 4성 화음을 넣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난한 이에게 가진 것을 나눌 때에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실천하면 그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서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에게 찬미의 노래를 영적으로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찬미를 위해서 오르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하느님을 향한 악기로 쓰는 것이지요.
하느님에게 우리에게 남는 무언가를 드린다고 그분이 기뻐하리라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은 분입니다. 다만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잃었던 양을 되찾는 기쁨, 잃었던 은전을 되찾는 기쁨, 즉 우리가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하느님을 따를 때에 우리는 그분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게 됩니다.
죄를 뉘우치는 법, 죄를 없애는 것은 내 죄에 대해서 무언가 엄청난 것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불의함을 멀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나는 나를 바쳐야 속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집회서 저자의 지혜는 놀랍습니다. 그는 수천년이 지나도 전혀 퇴색되지 않는 지혜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법을 적어 놓았습니다. 모쪼록 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의 본뜻을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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