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하고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때에 우리는 엉킨 실타래를 마침내 풀어낸 것 같은 지성적인 기쁨을 얻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이 그 상태에서 머무르게 된다. 즉 그 깨달음으로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깨달음은 ‘시작’이고 ‘전조’일 뿐이었다. 진정한 깨달음, 우리가 ‘영적인 깨달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삶’에서, ‘구체적인 실천’에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실천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좋은 책, 쉽게 설명하는 책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게 책을 읽은 뒤에 현실적인 삶으로 돌아오면 바로 내 곁의 형제 하나도 제대로 용서하고 감싸 안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별을 찾은 동방박사들은 여정을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그 길고 긴 여정의 마지막에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빌라도는 진리이신 분을 바로 앞에 두고도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권력과 그의 명예심이 그의 참된 결단의 행동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아주 작은 빛 하나로도 길을 떠나 진리를 만날 수도 있고, 반대로 진리를 바로 눈 앞에 두고서도 그것을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깨달은 것을 실천해야 한다. 물론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아예 인지 자체를 하지 못했는데 그것을 실천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닫는 것에서 멈춰서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좋은 글을 읽고는 ‘아!’하고는 거기에서 멈춰 버리고 만다. 세상의 재물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배우지만 이내 다시 탐욕에 사로잡히고, 미모에 집착하고 세상이 주는 쾌락들에 목을 매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는 분이다. 그러나 그 빛을 받아들이는지 거부하는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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