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들이 계속 가진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자들이 위로 상승하면 안됩니다. 가진 자들의 특권이 유지되기 위해서 그들에게는 평등함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차별이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돋보이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들은 차별을 지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차별에 적절한 법적 용어를 붙여 그것을 정당화하겠지요.
이 사회는 기회를 잡은 부자들을 전면에 부각 시킵니다. 즉 ‘가난한 이도 언제든지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파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좋은 기회가 오지 않는 성실하고 책임있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왜 모든 이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노력을 하는데 누군가에게는 그 노력이 엄청난 보수로 주어지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노력이 쥐꼬리만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그리고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투쟁을 내세우곤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싸워 전복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식의 투쟁은 그저 ‘뒤집기’를 할 뿐입니다. 즉 아래에 있던 세력이 위로 올라가고 반대로 위에 있던 세력이 아래로 내려갈 뿐이지요. 물론 그마저도 일어나지 않으니 아래에 있던 대표 세력 몇몇이 위로 올라가고 말고 상황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로 유지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은 외적인 무언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내면에 숨겨져 있습니다. 남들을 짓밟고 싶어하는 마음, 그렇게 심하게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남들 위로 올라서고 싶은 마음, 즉 남들보다 내가 더 특별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재주와 특성이 있고 그로 인해서 이미 특별합니다. 그 특별함은 하느님께서 잘 알아 주시는 것이지요. 헌데 우리는 우리의 특별함으로 인해서 다른 이들의 소중함을 무시하려는 유혹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즉 다른 이들도 그들 나름대로 소중하지만 저마다가 가진 특별함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무언가를 더욱 부각시켜 다른 이들이 그에 범접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 돈, 권력, 명예와 같은 수단들은 바로 우리를 서로 분리 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풍요로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탐욕을 적용시켜 풍요로움을 사라지게 만들어 버리고 몇몇이 그것을 독점하게 만들어 버렸지요.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존엄함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존엄함만을 이기적으로 내세우면서 타인을 짓밟아 버리게 되었지요. 하느님은 인간이 권위 있게 하셨고 하느님의 영광을 닮은 영광을 입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몇몇 사람에게 집중시켜 그들만이 사랑받게 만들고 타인들은 소외 당하고 잊혀지게 만들어 버렸지요.
과연 이런 움직임은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하느님의 보살핌을 받는 동안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이들을 보내어 사람들의 내면을 수정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셨지요. 그러나 하느님께서 직접 세상에 오셨다고 세상이 순식간에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최종 선택은 저마다 본인 스스로 하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이 어지러운 세상에 우리 자신을 구해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다른 이들도 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저마다 주어진 달란트대로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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