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계획을 짠다고 운동이 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운동 계획이 구체적으로 없어도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수많은 프로그램과 운동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그것이 미흡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실행시킬 의지가 부족할 뿐입니다.
그럼 우리는 의지가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의지가 다분합니다. 돈을 벌려는 의지, 아름다워지려는 의지, 남들보다 나아지려는 의지, 명예를 얻고 권력을 얻어 보려는 의지가 다분합니다. 다만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의지가 부족할 뿐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다른 것에 대한 의지는 다분한데 왜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의지는 부족한 것일까요?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세상은 그들 앞에 분명한 현실로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 매력을 느끼고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하느님에게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한때 모두 하느님을 받아들인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좋으심을 인정했고 그분을 뒤따르기로 결심한 이들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그들은 하느님을 내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자신의 뜻과 부딪히는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맞부딪힐 때에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과감히 내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도전을 수용하고 이겨낼 마음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엄연히 드러난, 이미 자신들이 바라본 하느님을 보이지 않는다고 우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오래되다 보니 정말 하느님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결국 그들 자신의 욕구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해서는 안될 일들까지도 서슴없이 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어두움을 늘려 갔지요.
새로운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분 앞에 살아가는 이가 필요합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이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을 살아내는 도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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