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면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물이 불을 끄고, 또 기름은 불을 키우는 것처럼 인간의 내면에도 그러한 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지요.
인간은 사랑 받고 싶어 하지만 그 사랑을 어디에서 어떻게 추구 하느냐에 따라서 그 양상은 너무나도 달라지게 됩니다. 사실 거의 모든 행위는 하나의 목적에 촛점 지워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지요. 하지만 그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추구하고 얻어 내는가 하는 것에서 우리는 저마다 다른 관점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의 관심사인 돈에서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돈을 왜 벌고자 할까요? 그 안에는 어떤 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일단 돈을 벌면 편안합니다. 돈이 있으면 원하는 것을 살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고, 뼈가 빠지게 일할 필요도 없지요. 왜냐하면 나는 쉬고 싶지 일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련의 문장들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지요. 바로 ‘돈’이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게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돈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때로 다른 무엇과 충돌을 합니다. 간단하게는 ‘다른 이들’과 충돌을 하지요. 내가 원하는 호텔방은 다른 이도 원하는 호텔방이고, 내가 사려는 차는 다른 이도 사고 싶어하는 차이고, 내가 원하는 쾌락은 다른 이도 원하는 쾌락이어서 그 ‘다른 이’와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지요. 왜냐하면 더 많은 돈은 다른 이를 효과적으로 걸러내는 좋은 수단들을 제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내가 이용하는 것들에 다른 이들을 범접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이라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아서 결국 ‘이기성의 감옥’에 그를 가두어 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헌데 만일 그 ‘다른 이’가 내가 거부할 수 없는 무엇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즉, 그 ‘다른 이’가 단순한 한 인간 존재가 아니라 영원에서부터 기인하는 분, 내가 있기도 전에 계셨던 분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근본 선택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분을 올바로 깨달아 그분 앞에 순명하던지, 아니면 그분마저도 ‘이용해 먹고자’ 나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이들이 하느님을 이용하려고 듭니다. 자신들이 가진 수단을 통해서 전능하신 분의 의지를 뒤바꾸어 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내가 바뀌기 싫으니 니가 바뀌어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능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의 분량을 삭제하고 그 대신에 다른 무언가를 채워 넣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 인간의 이기성에서 나온 순간적인 감정의 변화인 ‘사랑’이 아닌 하느님께서 본래적으로 우리 내면에 심어 놓으신 질서에 해당하는 그 사랑은 우리가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 안에 숨어있는 의지를 우리가 활용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싫어서 저항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바로 이 절대자의 존재 앞에서 자신의 본질을 드러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이기적이고 편협한 존재로 변질되어 가던지, 아니면 진정한 빛을 향해서 한걸음 나아 오던지 하게 됩니다.
인간의 내면 안에는 수많은 움직임이 작용하고 있지만 사실 그 모든 것들의 방향성은 뚜렷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서 나아가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 안으로 더욱 굳게 뭉쳐 들어가거나 하는 두 가지의 움직임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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