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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직장생활을 합니다. 직장을 다니면 월급을 받고 다니지 않으면 월급이 없습니다. 당연한 이치이지요. 그래서 그 월급을 꾸준히 받기 위해서 직장에 다닙니다. 월급이 없는데 직장을 다닐 이유는 없겠지요. 신앙은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일까요? 신앙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즉 구원을 위해서 합니다. 구원에 도움이 되고 구원을 얻을 수 있기에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합니다. 구원이 없는데 신앙생활을 할 이유는 없지요. 그렇다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이들은 왜 그럴까요? 먼저 신자가 아닌 이들은 구원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신앙생활은 아직은 다가서기 힘든 삶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다가오기 주저하게 되고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구원이라는 것이 제대로 소개되고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구원의 몫은 사실상 기성 신자들에게 있습니다. 다음으로 신자인 이들은 구원이라는 것을 올바로 선포 받았는가 아닌가로 나뉩니다. 구원이라는 것에 대해서 올바로 선포받지 못한 채 신앙에서 멀어져 있다면 그들을 올바로 가르쳤어야 하는 이들에게 책임이 돌아갑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신앙의 엇나감은 가정에서 신앙의 전수가 올바로 이루어졌어야 하는 부모에게 그 책무가 돌아갑니다. 상황이 이런 지라 신앙에서 멀어져 있다고 해도 이들에게는 아직 올바른 구원의 선포에 대한 기회가 열려 있는 셈이고 그런 올바른 선포 뒤의 결정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자들 가운데에서 구원에 대한 의미를 알면서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셈이고 알면서도 거부하기 때문에 구원의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지게 됩니다. 이들은 멀어져 있는 시간만큼 그 멀어짐이 더 강해지게 마련입니다. 신앙생활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어떨까요? 이들도 상황이 간단한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원이라는 진정한 목적을 품고 신앙의 삶을 성실히 실행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구원이라는 것과 상관없는 &#

사제 일상 만화 - 미사 후 인사

 

초전성당 견진성사 특강 강의록

견진성사 특강 (성경구절 선정 및 묵상) 1일차 - 믿는다는 것 견진성사의 견진이라는 것은 굳힌다, 단단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미 지니고 있는 신앙을 더 단단하게 해서 소위 영혼이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것을 단단히 할 것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빵을 만드는데 시멘트 가루를 들고 와서는 이것을 단단하게 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는 우리의 신앙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는다고 하는데 과연 무엇을 믿는 것인지? 또 어떻게 믿는 것인지 모르는 채로 그냥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믿음이라는 말은 ‘신앙信仰’이라고도 불립니다. 신앙이라는 단어는 믿는다는 의미의 신信과 우러른다는 의미의 앙仰으로 구분해서 살필 수 있습니다. 먼저는 믿음을 살펴봅시다.  1. 서로 믿다 우리는 사실 믿음으로 구축된 사회 안에서 살아갑니다. 추석 연휴 중 토요일에 초전의 0번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르신들의 편의를 위해서 이 연휴에도 운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신뢰 관계가 없으면 버스를 어떻게 이용을 할까요? 어느 시간대에 온다는 것을 믿고 나가서 타야 할텐데 그 시간에 온다고 하고선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다면 신뢰는 깨어지고 세상 일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돈이라는 것도 신뢰를 기초로 하는 것입니다. 얼마의 돈을 내밀면 그 가치에 해당하는 상품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처럼 그런 기초적인 신뢰가 무너진 곳에서는 오늘 지니고 있는 돈의 가치와 내일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돈이라는 것 자체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게 됩니다. 결국 사회의 기반이 무너지는 셈입니다. 우리는 사실 이미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것을 눈에 보이는 사회 안에서만 사용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2. 하느님을 믿다 우리가 이렇게 믿음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