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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어린 시절

예수님의 어린 시절은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하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오늘 복음의 부분입니다. 이 내용을 무심히 살펴보면 마치 예수님이 부모님에게 반항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이는 복음을 지나치게 표면적으로 읽는 것입니다. 마치 술꾼들이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성모님의 카나의 혼인잔치의 말씀을 제멋대로 인용해서 '아들아 술이 떨어졌다'고 하면서 서로 농을 주고받는 것처럼 성경은 누가 어떤 태도로 읽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성경은 그냥 소설처럼 읽고 우리가 가진 상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 무게 중심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고 읽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고 경솔하게 가출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참된 아버지가 누구이며 예수님이라는 분이 내면에 갖추고 있는 지혜가 겉으로 드러나는 외면의 어린 모습과는 상관없이 상당히 심오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부모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그 말의 진의를 깨닫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었음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여전히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활동을 하기는 하지만 내면 깊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으로 하느님의 외아들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는 데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많이들 의심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린 예수님조차도 지혜와 키가 자라난 것처럼 우리의 하찮은 신앙도 성모님처럼 꾸준히 내면에 간직하면 언젠가 점점 더 성장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정

가정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전통적인 가정상은 점점 사라지고 핵가족이 대중화 되었으며 나아가 한부모 가정도 이제는 흔하게 관찰됩니다. 하지만 그 어떤 형태의 가정이라도 중요한 영역은 외부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족 구성원들의 내면, 영적인 영역에 가정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돈을 추구하는 가정이라면 그 가정이 아무리 외적으로 튼튼해 보여도 결국 서로 다투고 증오하고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 돈은 언제나 탐욕과 연계되어 있고 나아가 교만과 이기성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정에는 다른 법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익이 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선이 됩니다. 그래서 자식도 이익이 되면 낙태를 해도 상관이 없고 부모도 이익이 되면 내버려도 상관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돈을 기반으로 움직이게 되고 가족 구성원은 한 지붕에 살더라도 마음이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가정은 '신앙'이라는 중심 가치로 뭉쳐 있는 가정입니다. 이 신앙은 우리에게 하느님이라는 참된 아버지를 알려 주고 그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바를 차근차근 가르쳐 줍니다. 그것이 2독서의 내용입니다. 이 가정 안에는 동정, 호의, 겸손, 온유, 인내가 존재하고 사랑이 지배하는 가정입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드리는 가정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합니다. 이것이 신앙 안에서 형성된 가정입니다. 모쪼록 여러분의 가정도 이러하기를 바랍니다.

죄를 상쇄하다

우리는 한편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다른 한 편으로 죄에서 해방되고자 합니다. 이 둘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죄에서 해방되어야 행복해 질 수 있으니까요. 죄는 단순히 규정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다. 즉, 주일미사를 빠졌다고 무조건 죄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근본에 하느님에게서 벗어나려는 마음이 죄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미사를 나오더라도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죄가 형성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 죄에 따른 결과로 나중에는 미사에서 멀어지게 되겠지요. 따라서 죄는 보다 내면의 심오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느님에 대한 거부를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보다 내가 욕구하는 것을 앞세울 때에 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1독서는 우리가 그런 죄에서 용서받고 또 죄를 상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에 대한 공경입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우리가 부모님을 올바로 섬겨야 마땅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노화를 겪으면서 서서히 약해지고 부족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런 부모님, 나아가 부모님의 세대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은 원래 내리사랑입니다. 우리는 자녀들과 아이들을 이뻐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 방향을 바꾸어 위로 향하는 사랑을 가르치시고 우리가 그것을 실천할 때에 우리의 죄를 상쇄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단, 예외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고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기 위한 것이 본질입니다. 그러나 만일 예외적인 경우에 부모님이 나를 하느님에게 나아가는 길에서 멀어지게 만든다면 그때는 우리는 사도들이 아버지와 배와 그물을 버린 것처럼 인정에서 해방될 필요도 있습니다. 물론 이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