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4주 주일
둘째아들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처음에 유산을 받아 나간 그 삶은 헛된 망상을 쫓는 길이었지만
덕분에 뉘우침을 얻었고 오히려 삶의 본질에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앞으로는 얻은 삶을 기쁘게 살아갈 것이다.
첫째아들은 타인의 삶을 살아왔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보지 못하고 늘 아버지의 처신을 보고 살아온 셈이다.
그는 무엇이 진정한 삶인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나아가 진짜 삶을 얻은 동생을 질투어린 시선, 증오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산들 바람이 불어와 코를 간지를 때에 기분이 좋아질 줄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타인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잘한다고 박수를 쳐주고 환호해 줘야 비로소 기분이 좋아지는 이들
그들은 '타인의 인정'이라는 약물에 쩔어있는 사람들이다.
왜 그들의 시선에 당신의 삶을 맡기는가?
당신의 삶의 본질로 돌아오라.
아침에 침상에서 깨어나 당연히 좋을 기분을 왜 걱정과 근심으로 망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참으로 슬픈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둘째아들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처음에 유산을 받아 나간 그 삶은 헛된 망상을 쫓는 길이었지만
덕분에 뉘우침을 얻었고 오히려 삶의 본질에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앞으로는 얻은 삶을 기쁘게 살아갈 것이다.
첫째아들은 타인의 삶을 살아왔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보지 못하고 늘 아버지의 처신을 보고 살아온 셈이다.
그는 무엇이 진정한 삶인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나아가 진짜 삶을 얻은 동생을 질투어린 시선, 증오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산들 바람이 불어와 코를 간지를 때에 기분이 좋아질 줄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타인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잘한다고 박수를 쳐주고 환호해 줘야 비로소 기분이 좋아지는 이들
그들은 '타인의 인정'이라는 약물에 쩔어있는 사람들이다.
왜 그들의 시선에 당신의 삶을 맡기는가?
당신의 삶의 본질로 돌아오라.
아침에 침상에서 깨어나 당연히 좋을 기분을 왜 걱정과 근심으로 망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참으로 슬픈 존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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