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내 걸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줘야해요?"
지난 주일 저녁, 한 달에 한 번 있는 한국 신자 모임에서 교리를 마치면서 한 청년이 나에게 물은 질문이다.
"음…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에수님은 그러셨지.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을 물리치지 마라.'라고."
"그 친구가 나보다 더 잘 사는데도요?"
"음, 한 번 생각을 해 보자꾸나. 우리가 누군가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할 때에는 상황을 잘 분별해야 해. 먼저 나 자신에 관한 건데, 내가 주지 않으려는 이유가 그 물건이 아까운 마음에 그런 거라면 차라리 줘 버리는 게 나아. 하지만 다른 경우에 나는 이미 내가 가진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고, 더군다나 그 친구가 자꾸만 달라고 하는 것이 진짜 필요로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탐욕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면 그 사실을 알고 그것을 고쳐주고 싶은 마음에서 주지 않는 게 오히려 더 낫지."
"네…"
"하지만 우리는 완성되지 않은 존재라는 걸 잊지 말거라. 이든 저든 너는 하나의 결정을 하게 될 거고, 그리고 그 결정을 실행하게 될거야. 그리고 나서는 마음을 잘 살펴봐. 네 마음이 즉 네 양심이 네가 행한 것의 반대의 일을 했어야 했다고 계속 내면에서 소리치면서 아픔이 느껴지면 다음 번에는 그 반대의 일을 하면 돼. 하지만 그렇지 않고 평안하다면 네가 한 일을 받아들이고 살아가. 우리는 이렇게 많은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거니까. 때로는 쓰러져도 괜찮아."
이 말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주임 사제로서 순간순간 다가오는 모든 경우에 나는 '완벽한'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실수하고 넘어지면서 하나씩 하나씩 보완해 나가는 셈이다. 물론 때로 내가 하는 그 실수가 그 일을 당면한 당사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하겠지만 한 사제가 그나마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중에 저지르는 실수는 분명히 하느님께서 다른 쪽으로 보듬어 주시리라고 생각한다.
어느 자리에 오른다는 건 그만한 책임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자리가 한 가정의 가장이든, 한 학교의 교장이든, 어느 본당의 주임이든 누군가는 그에 상응한 책임을 지니게 된다. 잘못을 범했다는 것이 명백할 때에 그 책임을 충분히 지고 나아가 용서 청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누군가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나를 위시해서 우리 모두는 내 책임이 아닌 일을 떠맡고 있는 누군가의 직무를 너무나 쉽게 생각해 버리고 마는 경향이 있다. 직장 상사를 욕하고, 장상을 마땅찮게 생각하는 이들은 생각을 고쳐먹을 필요가 있다. 언젠가 그 일을 책임질 수 있게 될 때에만 한 사람은 그 직분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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