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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주일 강론


성지주일 아침이다.
딱히 강론을 준비하지 않았다.
다만 행렬 때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군중의 기쁨을 함께 나눌 생각이고,
행렬을 마치고 들어가서는 수난 복음을 읽은 후에
예수님을 못박으라고 외친 그 군중들이 바로 
행렬 때의 기쁨을 나눈 똑같은 이들이라는 걸 이야기할 생각이다.

결국 그놈이 그놈인거다.

세상 안에는 지나치게 기뻐할 일도
반대로 지나치게 화내거나 슬퍼할 일도 없다.
또 내 주변의 인간들이 이렇다 저렇다 하더라도
결국 하느님 한 분 안에서 쉬는 게 낫다.

그들은 제가 좋을 때는 좋다고 환호했다가
제가 싫을 때는 싫다고 침을 뱉고 머리를 때리고 할 것이다.

이 말을 극명하게 표현한 말이 있으니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라는 말이다.

헐리우드 영화를 볼때마다 조금 재미있다 싶은 게,
그들이 영화 상으로 '신앙'을 드러내기는 힘드니까 차선책으로
거의 가족 간의 사랑을 마지막 해결책인 듯이 제시한다.
주인공이 엄청 싸우다가도 결국엔 가족을 구출하고
엄청난 갈등 상황이 있다가도 결국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등등이다...

가족유대를 최우선시하는 이들도 언젠가는 실망을 예비한 셈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생각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한결같은 분이 계시니 바로 우리 주님이다.
인간들이 하느님을 이렇게 상상하고 저렇게 상상해서
벌도 주셨다가 질투도 하셨다가 화도 내시고 또 엄청 자비롭기도 하시는
변덕스러운 하느님을 만들어 내어 버렸다.
하지만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에 변함이 있는 분이 아니시다.

당신의 사랑은 항구하고 영원하다.
그 사랑 안에 쉬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세상 유혹에 자꾸 시선이 돌아가서
우리 스스로 불안을 자아내는 셈이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쉬어야 하고,
그 사랑을 간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사랑을 지닌 사람은 비로소 '믿을 만한 사람'이 된다.
우리의 변덕스러운 '기호'가 아닌 '하느님의 사랑'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품으라는 말인 즉슨 '성령'을 지닌다는 말이다.

말이 자꾸 장황해지려고해서 그만 두어야겠다.
가톨릭의 교리는 모두 하나로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인간의 부족과 하느님의 사랑,
그리고 그 둘을 소통하게 하는 예수님.

곧 행렬이 시작된다.
하느님께서 오늘 하루 시원한 날을 주셔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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