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어딘가로 향해 있어.
우리는 많은 경우에 그 마음의 방향대로 말하고 실천하게 마련이야.
세상적인 무언가에 끌린 사람은 제 아무리 착한 척을 하려고 해도
언젠가는 그 끌리는 마음에 따라서 행동하게 되지.
반대로 하느님에게 끌린 사람은 제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결국엔 돌아오게 되어 있어.
이 근본의 이끌림을 돌이켜 살피고
엇나간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묵상이야.
잘 나아가 있는 방향 그 자체를 즐기는 건 관상이라 할 수 있겠지.
이 방향을 굳히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들이 염경기도와 교회 안의 여러 예식들인 셈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니?
근본 방향이 어긋나 있는데도 교회 안의 것들을 행할 수 있다는 말이야.
근본 방향이 어긋나 있는데 관상을 한다는 건 얼토당토 않은 말이구 말야.
묵상을 한답시고 엇나간 방향을 더 굳히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니까.
넌 무엇을 바라니?
정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거니?
아니면 네 뜻이 하느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바랬던 거니?
네가 미워하는 그 일과 사람이 정말 네 뜻대로 사라지기를 바라는거야?
아니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네가 그 일과 사람을 껴안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는 거니?
문제는 사라지지 않아, 절대로.
그리고 네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구 말이지.
네 마음의 근본에 집중해.
그리고 그 방향을 저 높은 곳으로, 하느님께로 들어높이길 바래.
결국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이끌리는 곳으로 매일매일 나아가는 셈이니까.
방향만 잘 잡아 놓으면 세상 안에서 실패한다 해도 괜찮아.
그 실패는 오히려 내가 정해 놓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추진제가 될테니 말야.
사랑하도록 해.
네 주변의 모든 것들을 껴안으려고 노력해봐.
인생이 몇 배는 더 아름다울거다 아마.
<디지털 시대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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