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4주 화요일
무엇이 병인가? 몸이 죽도록 아픈 건 분명한 병의 표지이고 거기에는 이변의 여지가 없다. 아픈 이는 방문하고 보살펴주면 된다.
문명화라는 움직임은 '효율성'과 그 뒤에 감춰진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이 병자들을 모조리 병원이라는 시설에 수용했다. 그 덕에 우리 주위의 집에서 아픈 이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병이 사라진 건 아니다. 현대인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마비에 시달리고 있고 오직 "물이 출렁이는" 것과 같은 얼마 되지 않는 신비한 일로서만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착각하고 일생을 불행 속에서 엮어간다. 이는 안락과 성공이라는 신화이다.
언젠가 성공을 해서 돈을 많이 벌면 이 마음의 공허함과 어두움이 사라질거라는 착각 속에서 마음이 마비된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허나 어쩌겠는가? 마음은 갈수록 더 원래 궤도에서 멀어져만 가는 느낌인 것을...
그래서 예수님이 다가오신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웃기는 질문 "건강해지고 싶으냐?" 참 당황스럽다. 치유가 당연한 것 같은데 당연하지 않은 이 상황. 예수님은 우리에게 치유의 원의를 갖고 있는지 물으신다. 왜냐면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입으로 예수님을 찾지만 실제로 그분을 만나려고 하지 않고 심지어는 만나기를 싫어한다.
고집 피우는 아이를 보았는가? 자기가 하려는 게 나쁜 것인지를 알면서도 하려는 아이. 어른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자신을 좀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워하는 어른. 탐욕의 결과는 파멸 뿐이거늘 늘 필요 이상을 원하는 이들...
예수님은 물으신다. 건강해지고 싶으냐고... 그리고 그 응답을 들으시고 당신의 일을 하신다.
사실 오늘 복음에서는 두 환자가 있었다. 육의 병을 지닌 환자와 마음이 마비된 바리사이들. 하지만 기적을 통해서도 마음이 마비된 이들은 나을 수가 없었다. 현대의 마음병 환자들이여, 당신들은 진정 건강해지고 싶은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이다.
무엇이 병인가? 몸이 죽도록 아픈 건 분명한 병의 표지이고 거기에는 이변의 여지가 없다. 아픈 이는 방문하고 보살펴주면 된다.
문명화라는 움직임은 '효율성'과 그 뒤에 감춰진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이 병자들을 모조리 병원이라는 시설에 수용했다. 그 덕에 우리 주위의 집에서 아픈 이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병이 사라진 건 아니다. 현대인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마비에 시달리고 있고 오직 "물이 출렁이는" 것과 같은 얼마 되지 않는 신비한 일로서만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착각하고 일생을 불행 속에서 엮어간다. 이는 안락과 성공이라는 신화이다.
언젠가 성공을 해서 돈을 많이 벌면 이 마음의 공허함과 어두움이 사라질거라는 착각 속에서 마음이 마비된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허나 어쩌겠는가? 마음은 갈수록 더 원래 궤도에서 멀어져만 가는 느낌인 것을...
그래서 예수님이 다가오신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웃기는 질문 "건강해지고 싶으냐?" 참 당황스럽다. 치유가 당연한 것 같은데 당연하지 않은 이 상황. 예수님은 우리에게 치유의 원의를 갖고 있는지 물으신다. 왜냐면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입으로 예수님을 찾지만 실제로 그분을 만나려고 하지 않고 심지어는 만나기를 싫어한다.
고집 피우는 아이를 보았는가? 자기가 하려는 게 나쁜 것인지를 알면서도 하려는 아이. 어른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자신을 좀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워하는 어른. 탐욕의 결과는 파멸 뿐이거늘 늘 필요 이상을 원하는 이들...
예수님은 물으신다. 건강해지고 싶으냐고... 그리고 그 응답을 들으시고 당신의 일을 하신다.
사실 오늘 복음에서는 두 환자가 있었다. 육의 병을 지닌 환자와 마음이 마비된 바리사이들. 하지만 기적을 통해서도 마음이 마비된 이들은 나을 수가 없었다. 현대의 마음병 환자들이여, 당신들은 진정 건강해지고 싶은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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