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부모님은 우리에게 나름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세상 그 어느 부모도 자기 자녀가 얻어 터지는데 분통이 터지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방어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하느님이란 부모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이 세상에서 철 없는 존재로 살아가며
우리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당했듯이 이런 저런 곤란한 일들에 시달립니다.
헌데 우리의 부모님이신 하느님은 우리가 어릴 적 배웠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어둠에 또 다른 어둠으로 맞서지 말고
그 어두움을 더 큰 사랑으로 감싸안으라는 색다른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은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모님의 뜻을 가장 잘 아신 외아들이셨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동은 곧 부모님의 뜻을 고스란히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분이 죄인들의 모함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십니다.
다른 방법이 왜 없었을까요?
그분은 수천명의 천사를 불러 반항하는 인간들의 목을 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끝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셨고,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가장 어리석어 보이는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동네 아이가 내 오른뺨을 치는데
그걸 참아받고 나아가서 그 아이를 사랑하라는 이상한 가르침…
죄를 짓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구해 주시려는 예수님,
안식일의 규정을 어기면서도 수십년간 병을 앓아온 이를 돌보시는 예수님,
자신을 은전 20냥에 팔아 넘기려는 유다의 계획을 알고도 그가 그 일을 하도록 두시는 예수님,
우리는 아직도 그분의 참된 사랑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고 있지 못합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려면 서로의 모난 부분을 상대측에서 감수해야 합니다.
이 일치의 신비를 모르는 이들은 그저 모난 부분을 잘라내려고만 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진정 잘라내어야 할 죄와
인간이 만들어놓은 규정의 어김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선물하는 사랑을 이루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완전해 질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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