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소비를 지향하는 이 사회는 짐짓 그렇지 않은 듯 소비자들을 속이면서 팔아 제끼기에 여념이 없다. 그 총화는 바로 '광고'이다. 광고는 소비사회의 중재자인 셈이다. 필요에 의해서라면 절대로 사지 않을 상품에 엄청난 가치를 부과해서 최고의 가격으로 팔게 한다. 그래서 광고는 재미있고, 탐욕스럽다. 광고 속의 사람들은 울지 않는다. 늘 웃고 있다. 소비를 '행복'에 연결시켜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자연스레 '소비'가 '행복' 그 자체인 줄로 안다. 우리 스스로의 욕구를 솔직하게 느낄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렇게 탐욕스럽지 않으며 그저 하루에 필요한 것들이라고는 약간의 음식과 하루를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들이 전부이다. 그래서 올바로 깨달은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도외시되고 도태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나아가 이 사회는 그런 이들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소비문화에 응축된 '악의 기운'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세상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눠보라. 그리고 여러분이 지닌 영성적 흐름을 친구들에게 조금만 언급해보라. 그러면 그들의 반응이 나올 것이다. 새 소식과 새 상품에 목을 맨 이들 가운데에서 그것을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 흐름에서 벗어난 이들은 시간이 남는다. 그리고 자연스레 영적 갈증을 느끼게 되고 그러한 것들에 더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 정 할일이 없으면 고요함 가운데에 머물 수도 있다.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창조주와 소통하는 시간인 셈이다. 소비사회는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어 휴식을 전혀 휴식같지 않은 것들로 채워 버렸다. 우리는 어딘가 가지 않거나,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다못해 영화를 보면서 소음과 영상들로 귀와 눈을 가득 채워야 그 불안이 가시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이다. 그런 위락의 행위들로 우리는 진정한 불안, 영원에 대한 불안을 저 깊이 숨겨 버리는 꼴이 된다. 하지만 자유로운 이들은 휴식을 취할 줄 안다. 그들은 일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반드시 요구되는 일을 성실히 행하고 나머지 시간을 안식한다. 그들은 시간을 채우는 거룩한 미사의 가치를 알며, 우리의 지혜를 가꾸는 시간들을 안다. 그리고 거기에 몸담는다.
10분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보라. 그
무(無)의 시간은 그 자체로 당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낼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