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쉽게 하는 착각 중의 하나는 자신에게도 신기한 일이 일어나면 믿음이 뛰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자동으로' 되어 버린다면, 즉 우리가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기적이 눈 앞에 펼쳐서 우리가 의지의 선택 없이 어쩔 수 없이 신앙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된다면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과업을 스스로 포기하시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느님은 인간을 스스로 선택하게 만드셨다. 그렇다면 그 선택의 양자는 여전히 '선택 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은 각 사람에게 회개에 필요한 은총을 선물해 주신다. 그러나 절대로 그것이 반대의 선택을 없애 버리지 않는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특유의 강성으로 인해서 어마어마한 기적을 목도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자신이 지금껏 추구하던 삶의 미련을 놓지 않고 고집스럽게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회개'를 했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이었다. 우리에게도 선택은 언제나 열려 있다. 우리에게 바오로 사도와 같은 수준의 기적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은 그런 종류의 기적 앞에서 우리는 선택의 자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리가 이해할 만한 수준의 초대가 이루어지는 것 뿐이다.
때로 스쳐 지나가는 케이블 채널의 평화방송을 통해서, 또는 한참 냉담하고 있는데 우연히 만나게 된 어느 신앙인의 모범 앞에서 우리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고 적지 않은 이들은 그러한 선택 속에서 세속을 선택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 투덜대기는 하느님에게 투덜댄다. 다른 이들에게는 신기한 일을 보여주면서 자신에게는 믿음에 획기적인 사건이 될 만한 기적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말이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할 만한 영역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겪게 될 것이다. 믿음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향해서 건너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영원을 선택한 사람과 현세에 머무른 사람, 이 두 부류로 나뉘게 될 것이다. 마치 양과 염소가 갈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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