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하지 말자는 주장, 혹은 관용을 가지자는 주장이 옆길로 새면 ‘선과 악’에 구분을 두지 말자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 이때부터 진정한 어둠의 세력의 농간이 시작되지요. 사람들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은 채로 서로가 다르기만 할 뿐 모든 것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결국 ‘악’을 스스럼 없이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워낙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겉으로 알아차리기는 참으로 힘이 듭니다. 이러한 분별에는 굉장한 내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물론 아주 어린 아이, 영이 맑은 아이, 혹은 영이 섬세한 어른은 그 즉시 느끼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금방 느끼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고 올바른 분별을 위해서는 합당한 훈련이 필요하게 됩니다.
한번은 한 사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내가 하는 일 중에 어느 특정 영역에 집중하면서 그 진의를 가려내려고 들었습니다. 그러고서는 그가 내린 결론은 내가 나 자신의 이익에 집중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독히 편협한 시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의 전체를 보지 않고, 보려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마치 길게 그어진 선 가운데 한 부분을 전자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고는 이 선은 뒤죽박죽이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 선은 전체적으로 보면 깔끔하고 잘 그어진 선이지요.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등장합니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고 그 보고 싶은 것은 벌써 우리의 내면이 결정해 놓은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느냐만 관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복음이 어떻게 선포되고 있는지를 보려는 사람은 전혀 다른 관점을 지니게 됩니다.
세상에서 멋져 보이는 모든 의견이나 활동이 다 ‘선’을 지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의견이나 활동 가운데에는 지독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지금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은 다음에 훗날 크게 사기를 치려는 마음을 지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서 좋은 것을 받는 이들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선포해 버릴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의 행위가 올바로 분별되려면 큰 그림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모든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일 가운데에서 좋은 일, 선한 일을 선택하고 그것을 위해서 헌신의 노력을 다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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