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의사입니다. 환자 하나가 찾아왔는데 그가 내보이는 증세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당신이 배워온 의술로 환자를 진단하자 환자의 내면에 더 중한 병이 있음을 알았고 그것은 생명과 직결된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환자가 내비친 증세는 일시적이고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고 먼저는 중한 병을 돌보고 난 뒤에 치료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상응하는 치료제를 지금 썼다가는 중한 병이 더 심각해 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치료를 시작합니다. 더 중한 병을 돌보고 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치료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환자는 투덜대기만 합니다. 자신이 바라보는 증세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의사는 엉뚱한 짓만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하느님은 무엇이 더 심각한지 알고 그것을 돌보아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피상적인 것만 일시적으로 해소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의 보다 심각한 질병이 있을 때에 그것을 치유하는 훌륭한 수단은 우리 삶에 다가오는 시련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시련들을 재빨리 없애고 삶의 안락에 잠겨들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 안에서 일어나는 아이러니입니다.
당신은 의사입니다. 환자 하나가 찾아왔는데 그가 내보이는 증세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당신이 배워온 의술로 환자를 진단하자 환자의 내면에 더 중한 병이 있음을 알았고 그것은 생명과 직결된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환자가 내비친 증세는 일시적이고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고 먼저는 중한 병을 돌보고 난 뒤에 치료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상응하는 치료제를 지금 썼다가는 중한 병이 더 심각해 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치료를 시작합니다. 더 중한 병을 돌보고 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치료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환자는 투덜대기만 합니다. 자신이 바라보는 증세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의사는 엉뚱한 짓만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하느님은 무엇이 더 심각한지 알고 그것을 돌보아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피상적인 것만 일시적으로 해소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의 보다 심각한 질병이 있을 때에 그것을 치유하는 훌륭한 수단은 우리 삶에 다가오는 시련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시련들을 재빨리 없애고 삶의 안락에 잠겨들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 안에서 일어나는 아이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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