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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받는 의인

악습에 깊이 빠져 그 악습을 즐기고 있는 이들은 자신을 악습에서 구해줄 모든 기회와 발언을 증오하게 됩니다. 반면 하느님의 자녀들은 자신들이 생활하고 실천하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증거할 따름입니다.

증오는 사랑을 적대시하고 경솔은 신중을 적대시하며 격분은 인내를 적대시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내 이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실하고 거룩한 삶의 족적을 뒤따르면서 당연히 세상 사람들, 저마다의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녀들은 눈엣가시 같아서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뽑아 버리고 없애 버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박해가 시작되게 됩니다. 그 박해는 직접적인 육체적인 제약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간접적인 명예의 실추나 그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추측과 험담과 같은 것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들이 기대하는 것은 이 현세 안에서의 승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현세 안에서는 세상의 자녀들, 악습에 가득하고 위선적이고 약삭빠르고 이기적이고 천박하고 사악한 이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는 세상의 상태에서 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 승리였다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당당히 내려오셔야 했을 것입니다. 아니 그 이전에 빌라도의 재판장에서 하늘의 표징을 끌어와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처럼 자시을 내어 바치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이 악을 모두 소진시킬 때까지 그리 하셨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영원' 안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자리, 영원한 다스림의 자리로 오늘도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악인들은 나날이 그들의 날수가 헤아려지고, 저울에 달려져 무게가 모자람이 확인되게 됩니다. 그들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중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세상에 빠져 있는 그들, 자신을 들어 높이며,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는 신들을 찬양하며, 사람의 목숨을 손에 잡고 계시며 모든 길을 쥐고 계신 하느님을 찬송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리라." (묵시 2,10)

댓글

익명님의 메시지…
아멘
익명님의 메시지…
사제로 부름받지도 않았고,
혼인으로 부름받지도 않았고,
수도자로 부름받지도 않았고....

어쩌라는 걸까요....

여러분들이 너무도 부럽습니다.
익명님의 메시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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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체를 손으로 모시는 게 신성모독이라는데 사실인가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습니다. 일단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체를 입으로 직접 받아 모셔왔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수난 만찬때에 제자들과 모여 함께 나눈 빵을 제자들이 무릎을 꿇고 입만 벌리고 받아 모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손으로 빵을 받아서 나누어 옆의 동료들에게 나누어가며 먹었습니다. 하지만 성체에 대한 공경이 날이 갈수록 더해 감에 따라 부스러기 하나라도 흘리지 않으려는 극진한 공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제단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입을 벌리고 받아모시게 한 것이지요. 그러다가 신자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고 또 입으로 모시다가 자꾸 사제의 손에 침이 발리니 위생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손으로 받아 모시게 한 것입니다. 사실 한국과 같은 곳은 입으로 받아 모시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전부가 손으로 받아 모십니다. - 그럼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왜 그러는 건가요? - 제가 보았을 때에는 성체에 대한 극진한 존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성체를 공경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만 손으로 모시는 사람을 잘못되었다고 할 필요는 없지요. 여기서는(볼리비아에서는) 입으로 모시는 사람과 손으로 모시는 사람의 두 부류가 있고 둘 다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입으로 모시는 이들의 혀가 제 손에 자꾸만 닿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고 이는 굉장히 비위생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모시는 것이 성체를 흘리고 떨어뜨릴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모시는 것이 보다 안정적이지요. 다만 손으로 모실 때에는 미사 전에 손을 깨끗이 씻고 왼손 아래에 오른손을 받치는 올바른 자세를 갖추고 왼손으로 성체를 받아 뒤의 사람이 앞으로 나와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옆으로 살짝 비켜나서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 성체를 모시고 나서 손에 남은 부스러기를 함부로 다루지 말고 입으로 가져가서 혓바닥으로 깨끗이 처리할 필요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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