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두 종류의 신자분을 만났습니다. 성당에 나오고 싶어도 육체적 한계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분과 다른 특별한 제약 없이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런 저런 이유를 핑계로 성당에 나오지 않고 있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이 양자를 모두 바라보십니다. 성당에 나오고 싶다고 문득 건강을 돌려주지도 않을 뿐더러, 성당에 나오지 않는다고 벌을 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제를 두셨고 둘 사이에 올바른 '사목'을 행하도록 초대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제 소명을 다하고자 둘 다 찾아가서 서로 다른 온도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측은 위로와 성사적 축복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건강'을 기본적으로 선물하시지만 우리의 탓으로 또는 때가 이르러 그 건강이 더이상 지속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많은 위로와 방문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은 그의 주변에 그 역할을 수행할 사람을 늘 두십니다. 그리고 한 측이 가진 약점이 다른 이의 헌신의 이유가 되게 하십니다.
반면 다른 측은 온유한 꾸짖음입니다. 지금 실행하고 있는 행동의 심각성을 깨우치고 더이상 자신의 영혼을 가지고 놀지 않도록 충고하고 꾸짖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온유함과 더불어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어,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대는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이러한 것들을 말하고 권고하고 또 꾸짖으십시오. 아무도 그대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십시오. (티토 2,14-15)
우리는 신앙은 그저 부드러운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을 다루는 데에 그저 부드럽기만 하다고 해서 모든 일이 바로 잡히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용기도 필요하고 강단있는 결정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에 흔히 사람들은 그런 충고를 건네는 사람을 싫어하게 마련입니다.
인기라는 것은 달콤한 유혹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하지 거부 당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짓 예언자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거짓 예언은 사람들의 귀를 달콤하게 해 주는 데에 쓰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소명을 받은 사람은 때로 사람들에게 거칠게 다루어질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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