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6,35
주님은 생명을 주시겠다고 했고 그래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가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당에 나아오면서도 내면이 굶주려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생명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신부님? 우리가 살아 남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는데요."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래서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동물들도 하는 일입니다. 새들은 그날 먹거리를 분주히 찾아다니고 쥐들도 그렇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생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생명은 그러한 생명이 아닙니다. 언젠가 우리에게서 사라져버릴 지상의 생명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선물해 주려고 합니다. 영원히 살아남아서 당신과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영혼의 진정한 생명을 선물해 주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 생명의 양식은 '믿음'으로 먹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입으로 성체를 집어 넣지만 그 가운데 진정한 믿음으로 그것을 삼키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마치 기름을 넣은 차가 달리고 물을 넣으면 차가 고장나는 것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다 비슷한 액체처럼 보이지만 그 차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무엇을 넣었는지가 판가름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믿음 없이 먹는 성체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근거가 됩니다.
예수님은 군중에게 말씀 하십니다.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우리 앞에 진리가 드러났지만 사람들은 어둠을 더 사랑했고 그래서 어둠의 말과 행실을 선호하고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반대로 믿음 안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단적인 예로 15프로의 이득을 보게 해주겠다는 사기꾼의 말은 믿어도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겠다는 이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흘려 버릴 뿐입니다.
그러나 100명이 모인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그 말을 듣고 변화된다면 그것은 가치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한 명이 씨앗이 되어 나머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의 능력은 그 표징에서 드러납니다. 그 표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이것이 표징입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으십시오. 눈 있는 사람은 보십시오. 그리고 함께 기뻐합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빛이 머무르는 곳에 어둠이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스테파노는 죽음을 당했고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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