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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



어쩌면 삼위일체라는 말마디 자체가 지나치게 무겁게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셋이 하나로 일치한다는 게 핵심인데 말마디가 너무 고상해서 듣는 순간 우리가 긴장하게 되는 걸지도 모릅니다.

하나됨, 그럼에도 고유함을 간직함이 핵심입니다. 물론 이는 물리학의 법칙이 지배하는 이 지상의 질서에는 맞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느님께서 이 물리의 세상을 만들어 내신 창조주인데 굳이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의 법칙에 종속될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하느님의 하나됨은 보다 천상적인 것이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짐작할 수 있고 다가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 자체도 물리의 법칙을 넘어서는 내밀한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영’이라고 부르지요.

두 물체가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마치 두 진흙을 한데 ‘뒤섞어’ 놓을 수는 있겠지만 이를 두고 완전히 하나 되었다고 하는 것은 뭔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두 영혼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질료가 없고 순수해서 얼마든지 하나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하나되는 데에 핵심은 그 영혼을 형성하는 가장 핵심이 하나되는 데에 관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자유의지’라고 부릅니다. 즉, 우리는 서로의 의지를 같은 것으로 만들 때에 하나될 수 있습니다. 성부가 의도하는 것을 성자가 그대로 이행하려 하고 성자가 의도하는 것을 성령이 따라 수행할 때에, 그리고 그 성령을 받은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성령께서 하시려는 대로 내어맡길 때에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자면, 오늘 내가 일하는 중에 짜증나고 화나는 부분이 있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나의 바람직한 모습을 성찰하고 그런 나의 부정적인 면모를 줄여나갈 수 있다면 나는 나의 의지를 내가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행하는 것이 되고 따라서 나는 삼위일체와 일치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삼위일체는 실천하는 것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절대로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해서는 삼위일체 근처에도 다가서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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