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일과 잘 하는 일, 그리고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은 서로 다른 결을 지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이에서 서로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이런 문제를 고민하는 이유는 많은 경우에 내가 겪는 일들은 대부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잘하고 못하고는 사실 부차적인 일입니다. 잘 해도 하기 싫은 일은 하기 싫을 뿐입니다. 반면 못해도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싶게 마련이지요. 반면 잘하고 못하고와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이 나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내가 하기 싫은 일이지요.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내가 잘 하는 일이 되고 동시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된다면 가장 환상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기술적인 측면이나 일의 강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의지'의 문제가 됩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내가 욕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의 욕구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지만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게 됩니다. 나 스스로의 인간적 욕구에 사로잡힌 사람과 나의 욕구를 다른 거룩하고 드높은 의지에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의 욕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이 굉장히 한정적입니다. 그리고 적게 노력하고 가장 많은 인간적 이득(돈, 명예, 권력)이 보장된 것을 선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이는 직업들을 선호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연예인들이 얼굴만 반반하면 출연료 수억을 받고 영화를 찍는 걸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 단순하게 주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이면에는 일반인들이 전혀 상상도 못하는 현실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우리 각자가 지닌 의지를 '거룩한 의지'에 동참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거듭해 나가면서 점점 그 일들을 잘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나 자신의 이기적인 의지를 포기하고 거룩한 의지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기 때문에 점차 그 일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변화해 가기 시작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강점입니다. 믿는 이들이 되는 것이지요. 세상 안에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동경을 한몸에 받으면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잘 하면서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개인적 욕구에서 발휘된 의지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허무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속이게 됩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말이지요.
십자가로 초대하는 우리의 신앙, 그리고 십자가는 근본적으로 우리 개개인이 떠안기 싫은 대상입니다. 오직 하느님에게 의지를 봉헌하는 이들, 즉 '믿는 이들'만이 그 십자가의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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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