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살아있는 지체가 되어야 한다.
살아있는 존재는 주변과 상호작용하면서 가장 나은 상태를 지향한다.
교회 역시도 살아있다면 그러해야 한다.
새로운 영세자가 줄어가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더는 교회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무심함을 반복적으로 비판만 하고 있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해보니 안되더라고 번복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바지가 물에 젖어 축축하고 그게 불편하다고 느껴진다면 벗어서 말려야 한다.
그냥 입고 있으면서 내 바지는 왜 이렇게 축축한가 하고 한탄만 해서는 안된다.
유사종교의 현실은 사람들의 내면에 영적 갈망이 실재하고 있다는 것이고,
지금의 교회는 그에 발맞추어 사람들이 갈망하는 부분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그것이야 말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의 핵심이다.
복음은 교리서 한 권 옆구리에 끼고 다가가서 지루한 설교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배고픈 이에게 빵을,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고
억압 당하는 이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늘상 해오던 일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서 무언가를 새로이 시도한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편의와 안락이 파괴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기득권과 특권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정 신앙이 있다면,
참으로 올바르게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한 심판이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의 상실이 아니다.
이제 새로운 판을 짜기 쉬운 시기가 다가왔다.
기존의 마냥 당연하기만 한 것들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었고
여러 면에서 새로운 형태로 발전해야 하고 그것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만일 교회가 이대로 옛 것에 머무르기만 한다면
성령은 돌에게서도 아브라함의 자녀를 만들어 내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찰하고 고민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면
성령은 우리를 도와 백배 천배의 열매를 얻게 해 주실 것이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한다.
복음이 핵심이다.
과연 우리에게 기쁜 소식은 무엇인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