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신부님 왜 레지오 에서는 단수를 헤아리는 건지요? 저는 하루 오단 많이라도 제대로 묵상 해도 될거 같은데요?
네, 그렇게 하셔도 되고, 사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단 한 번의 '성호경'을 바친다 할지라도 그 의미를 잘 이해하고 정성껏 바친다면 그 가치는 빛을 발합니다. 모든 기도가 같은 기준점에 놓여 있습니다.
첫번째 질문으로 돌아와서 레지오에서 '단수'를 왜 헤아리는 걸까요? 저의 솔직한 답변은 '모른다'입니다. 그런 전통과 관습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누가 시작한 것인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몇 가지 유추할 뿐입니다.
기도를 헤아리면서 바치는 관습 자체는 꽤나 오래되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묵주기도의 기원'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역사적 사실은 없습니다. 그저 어느 성인에게 성모님이 직접 가르쳐 주셨다던지 아니면 과거 사람들이 열심히 성모송을 바치던 습관 가운데에서 그것을 체크할 수 있도록 기도의 도구로 자리잡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백년 전의 과거에는 묵주기도를 체계적으로 바치는 일은 없었고 그저 주님의 기도와 교회 전통으로 자리잡아온 성경을 기반으로 한 성모님의 기도인 성모송을 사람들이 열심히 되뇌었습니다. 그 자체로는 좋은 시작이었고 아름다운 관습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무질서한 영역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자전거가 고장났을 때에 그냥 고치던 일을 '메뉴얼'로 만들어 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천상의 가르침이건 교회의 필요이건) 자리잡힌 묵주기도를 보다 더 체계화하고 지금의 성경의 각종 신비들을 묵상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빛의 신비'가 따로 추가된 것만 보더라도 이런 질서들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4개의 신비(환희, 고통, 빛, 영광)로 나뉘어진 묵주기도 체계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레지오는 신심활동단체로서 그 안에 엄격한 규율이 존재하고 성모님의 신심을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영적인 군대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대표적인 '영성활동' 가운데 하나로서 바로 '묵주기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묵주기도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들이 [레지오 교본]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이 레지오 단원으로서 가장 기초적인 활동입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숨쉬는 것과도 같은 것이지요.
제 분별로는 이 시점부터 사람들의 구체적인 실천이 개입되기 시작하고 오류가 끼어들기 시작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묵주기도는 레지오 단원들에게는 숨쉬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활동입니다. 이는 따로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활동이지요. 레지오 입단 초심자에게는 어느정도 교육이 되어야 하고 가르쳐질 필요가 있겠지만 정단원이 되고 나면 당연히 일상의 삶 가운데 해야 하는 활동인 것입니다. 따로 이에 대해서 언급하거나 이야기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지요.
* 문제는 레지오 단원들이 게을러지고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활동에 둔해지면서 시작됩니다.
레지오는 기초적인 신심의 훈련을 마친 상태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일상 안에서 실천하기 위한 조직입니다. 앞서도 말씀 드렸지만 하나의 '군대 조직'과 같습니다. 훈련병에게는 총쏘는 일, 제식 훈련, 개인정비와 같은 것들이 가르쳐지는 것이지만 내무반으로 들어오고 나면 본격적인 임무가 주어집니다. 포병은 포를 쏘고 정찰병은 정찰을 하고 헌병은 군대의 기강을 잡는 식이지요. 헌데 레지오가 구체적인 선교 활동이나 복음화 활동을 시작하면서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진취적인 일에 게을러지기 시작할 때, 그들은 내무반에 모여서 갓 들어온 새내기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총을 잘 쏘는지를 자랑하는 식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런 현상이 바로 '묵주 기도 횟수 자랑'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원래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 공동체에 어떤 부분에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그것을 위해서 헌신해야 하는 사명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저 '레지오 단원의 기득권'에 머물러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험담하기, 음주, 심지어는 타락)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자존심은 자신이 얼마나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는가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건 자신들에게 '숨쉬는 것'과 같은 너무나도 기초적인 활동인데 그걸 모임 자리에서 '활동보고'라고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들 가운데 누가 '나는 오늘 식사를 3번 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군가 '나는 오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장에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일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지요. 레지오는 세상을 '복음화' 하겠다고 나서는 자칭 활동단체입니다. 하지만 그런 활동이 미흡할 때에 남는 일은 그저 모여서 단단하게 굳어가고 서로의 경력이나 내세우는 형태로 엇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그 단체는 서서히 죽어가게 됩니다.
레지오에서 단수를 왜 헤아릴까요? 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주변 조건들도 함께 존재합니다. 교구나 본당 공동체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기도 바치기 운동'도 그 가운데 한 몫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 속에는 '드러나는 성과'를 바라고 그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숨은 일도 보시는 분이라는 것을 배워 알면서도 사람들에게는 보여지는 것이 자극을 줄 수 있기에 그것을 활용하려는 시도도 존재할 것입니다.
따라서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자체로 나쁘기만 한 활동은 없습니다. 때로는 필요할 수도 있고 그것으로 좋은 자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숨어 있는 동기와 의도를 잘 분별할 수 있다면 이미 하고 있는 일을 더 나은 상태로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가끔 가다 본당에서 무슨 무슨 목적으로 묵주 기도 바치기 운동을 하면서 그 횟수를 체크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성과주의'에 빠져서 어떻게든 그 횟수를 맞추려고 애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솔직하게 내가 헌신한 묵주기도를 적어낼 수 있도록 합시다. 적어도 성당을 다니면서 바치지도 않은 기도를 바쳤다고 거짓말을 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삶의 범위에서 내가 솔직하게 바친 기도가 다른 이들의 기도 횟수보다 적다고 부끄러워 하는 일도 없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렙톤 두 닢을 더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하루 오단을 바치더라도 정성껏 바치는 게 낫습니다. 혹시나 하루 종일 정말 바쁜 일이 있어서 겨우 자기 전에 성호경이나 긋고 자더라도 하느님은 기쁘게 그 기도를 받아 주실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