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스러운 어른이 있고 그렇지 않은 어른이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고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미 우리가 실천하는 부분입니다.
존경스런 어른은 그 존재 자체로 존경이 우러러 나옵니다. 우리가 그분께 드리는 존경은 그분의 삶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확립되는 것입니다. 향수병에서 향기가 나듯이 그분의 삶에서 향기가 나기에 존경이 절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따로 무언가 이렇다고 저렇다고 하지 않아도 곁에서 지켜보면 압니다. 교양있고 인격적으로 완성되어 있고 거기에 더해서 특별한 능력도 있으면서도 겸손하지요. 꾸밈이 없고 소탈하기도 합니다.
반면, 자신을 존경해 달라고 떼쓰는 어른이 있습니다. 그나마 입이라도 다물고 있으면 사회적으로 합의된 존경이라도 할 터인데 정반대입니다.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하나하나의 행동마다 역으로 존경을 까먹고 있습니다. 때로는 비굴하고 치졸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존경은 커녕 보기만 해도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헌데 문제는 그런 이가 '상사'로 존재할 때입니다. 솔직히 사람 보고 고르라고 하면 당장 때려치우겠지만 사회적 구조상 어쩔 수 없이 그 아래 속해 있어야 하니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와 때려 치우고 싶은 이유가 항상 속에서 반작용을 일으킵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간다고 절로 갖춰지는 덕이 아닙니다. 인격적 완성과 덕은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꾸준히 성장시켜야 하는 요소입니다. 책임질 줄 알고 또 필요하다면 도울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말'로 이러한 것들을 메꿀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꾸며낸 말로, 또 때로는 꾸며낸 행동으로 다른 이를 일순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잠시는 그렇게 속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들통이 나고 말지요. 신경질적인 사람은 영원히 자신의 신경증을 감추고 살 수 없습니다.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은 곧 바닥을 드러냅니다. 특정한 요소에 탐욕을 부리는 사람은 결국 숨겨오던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고야 맙니다. 악습이 가득한 이는 그로 인해서 넘어지게 마련이지요.
존경스러운 어른이 됩시다. 합당한 존경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절로 이끌려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존경은 꾸밀 수 있는 요소가 아닙니다. 존경은 그렇게 되는 것, 구체적이고 성실하고 꾸준한 실천으로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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