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를 기리는 일, 또는 한국적 환경으로는 순교자나 성인을 기리는 일은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그들의 참된 신앙을 상기하고 그것을 뒤따르고자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 모든 것의 원래 목적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목적 하에 파생되어 나오는 여러가지 다른 일도 있습니다. 즉, 여러가지 사업을 조성하고 기금을 모으고 건물을 짓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 속에 그들을 괴롭히고 사형을 언도하고 실행한 이들의 행위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그들의 잔인성과 사악함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됩니다.
문제는 그것을 조성하는 이들의 의도와 거기에 참여하는 이들의 의도입니다. 성인들의 거룩한 영성을 드러내는 것이고 순교 정신을 기리는 것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자칫 잘못하면 '사업'으로 변질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지방 정부와 연계해서 일종의 '관광' 사업을 벌이는 것입니다. 성인들의 수난을 두고 사람들이 구경하게 만드는 돈벌이를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두 번째 차원이 개입됩니다. 그곳을 방문하는 이들의 마음자세입니다. 누군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건 그곳을 찾는 발길이 진정 순교자와 성인들의 거룩한 여정을 조금이라도 닮으려는 의도라면 그들에게 남게 되는 것은 아름다운 체험입니다. 그들은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면서 그들의 고뇌와 아픔을 함께 나눌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게 지켜온 신앙의 뜨거움을 체험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가는 길에 맥주나 까고 술이 모자란다고 성질을 부리고 가서도 성지가 형편 없다느니, 모양새가 영 이쁘지 않다느니 다른 곳이 훨씬 낫다느니 품평회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이들이 진정한 성인을 맞닥뜨렸을 때에 예언자를 죽이는 일에 동참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제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삿밥이나 먹고 떠나려는 것입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루카 11,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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