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때에 그 두 사람의 기도가 영광스러운 하느님 앞에 다다랐다. 그래서 라파엘이 두 사람을 고쳐 주도록 파견되었다. (토빗 3,16)
의미없이 반복하는 말이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는 간절함과 진실성에 기반해야 합니다. 진실한 기도는 추진력을 갖습니다. 마치 추진제가 부족한 로켓이 하늘로 올라가려다 다시 떨어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간절함’과 ‘진실성’이라는 두 추진제로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려 집니다.
하느님은 그런 이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즉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응답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진 않습니다. 하느님의 최종적인 보상은 ‘영원한 나라’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은 모든 살아있는 이들의 아버지이시며 의인들은 죽어도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이 땅에서 그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더 많은 이들이 그들이 입은 은혜를 통해서 하느님을 배워 알고 하느님께로 나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은 필요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청하는 것이 하느님의 진리에 합당한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기적인 나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기도할 수 없습니다. 또 설령 좋은 것,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별다른 간절함 없이 건성으로 청해서도 안됩니다.
고3학생의 부모가 자녀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입니다. 하느님은 그 자녀가 설령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더라도 잘 되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3학생의 부모가 성당에 정성을 드린다면서 100일 미사를 넣고 그러면서 자녀에게 합당하지 않은 것, 즉 자녀가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데 좋은 대학에 어떻게든 보내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은 ‘간절하지만 진실성이 없는 기도’가 됩니다.
반대로 우리는 보편지향기도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곤 합니다. 그러한 기도는 하느님의 뜻에 너무나 합당한 것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거기에 별로 마음을 두지 않고 그저 입으로만 그 기도문을 읽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실하나 간절함이 없는 기도’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만일 성실하고 믿는 자녀가 하느님에게 간절히 청한다면 하느님은 그 즉시 그 청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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