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함, 즉 착함이라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범주를 뛰어넘는 말입니다. 즉 선함이라는 것이 그저 유순한 성격을 의미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 적극적인 의미가 포함된 말입니다.
선은 부족함을 감싸는 것이고 심지어는 악을 향해서도 손을 내밀어 개선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부분에서 이 선은 올바른 분별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언가를 개선시키러 나아갔다가 도리어 오염이 되어 망가져 버리면 소용없는 일이니까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떠올려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강도를 당한 이를 지나친 사제와 레위인들은 어쩌면 자기들 선에서는 나름의 ‘정의’와 ‘올바름’을 실천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피를 흘리는 사람을 만지는 것은 부정한 일이며 또 혹시나 그 사람이 이방인이라면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을테니까요.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에게 다가가서 상처를 싸매어 주고 여관에 데려다 주고 필요한 것을 내어주기까지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선’이 하는 일이지요.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는 선을 기대하기가 굉장히 힘이 듭니다. 세상에 어떤 기업이 진정한 의미의 ‘선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가난한 이를 위해서 기업 내에 책정된 돈을 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은 법적으로 ‘횡령’에 해당하는 일이니까요. 사회에 있어서 ‘선’이란 기껏해야 ‘정의’를 지키는 것 뿐입니다. 즉 ‘불의’를 막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늘어나는 어두움에 대응할 수 없습니다.
어떤 시스템이나 체제는 진정한 의미의 선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선함은 보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그 선의 주체가 되는 것이지요. 선한 마음들이 모이게 되면 사회의 시스템을 넘어서는 공동체적인 선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개개인의 자유에서 비롯하는 선이 모여서 이루는 결과물이지 시스템 그 자체가 선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떤 운동이나 기관이 선을 행하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스스로 선해져야 하고 선한 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바로 그러한 선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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