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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드러난 심판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요한 3,19)

사람들은 심판이라는 것이 마치 ‘신과 함께’라는 환타지 영화의 장면처럼 모든 일들이 끝나고 신이 그 사람을 불러다 놓고 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심판은 사실 ‘이미’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지금 선호하는 것 그 자체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을 통해서 숨쉬기에 물에 살고 우리는 공기를 통해서 숨쉬기에 여기에 삽니다. 이와 비슷하게 빛의 자녀들과 세상의 자녀들이 나뉘게 됩니다. 빛을 숨쉬는 이는 빛으로 다가서고 더 많은 빛을 찾지만 세상 안의 요소를 만족의 근거로 살아가는 이들은 바로 그것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는 월막 피정의 집에서 면담 성사를 주었습니다. 물론 성사 내용을 말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저는 그 안에서 뚜렷이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기를 원치 않는 이는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요. 외적인 형태로는 다 같은 성사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길을 찾고 빛을 찾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자기들이 상정한 최고의 방식을 고집하면서 그 자리에 머무르는 이들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씀이 다가올 때에 대부분의 경우에 그것을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말씀은 우리의 오류를 드러내고 그것은 우리를 아프게 하기 때문이지요. 상처난 부위에 손가락을 가져가면 움츠러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두 종류의 손길이 있습니다. 그 상처를 오염시키고 더 지독한 병으로 만들어 버리는 어둠의 손길과 그 상처를 닦아내고 치유하려는 손길입니다. 사람들은 상처 부위에 급히 말아놓은 붕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열어 보이기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일시적인 평안 속에서 붕대 속의 상처는 썩어 들어가기 시작하고 냄새를 풍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고쳐줄 수 있는 분에게 맡겨야 합니다.

하지만 고치는 이의 손길은 아픕니다. 왜냐하면 의사는 환부를 들여다보고 필요하다면 조직을 체취해 가야 하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도 그분이 다가오실 때에 숨어있는 속내가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지요.

결국 서로 결정하고 진행하는 방향이 달라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고 그것은 결국 그 자체로 그들의 심판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스스로 의학 지식이 없으면서 대충 발라놓은 상처가 덧나면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자신의 영혼을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착각하면서 그대로 방치하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과 삶의 한가운데에 우리의 자유의지가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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