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많이 받아야 사랑을 합니다. 아주 당연한 이치입니다. 아무도 체험하지 못한 것을 할 수 없고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것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을 많이 받아야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말 사랑을 받지 못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사랑의 축에 들어갈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사랑해 주어도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무용지물이니까요. 그래서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의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값비싼 제품'이나 '엄청난 재화'가 다가와야만 사랑 받는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원래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이며 우리가 지녔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이 사실은 거저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상당히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제가 적은 글을 볼 수 있는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하고 계신 것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만한 문명의 혜택 속에 살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끊김없는 전기가 있다는 이야기이고 인터넷이나 LTE, 3G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며, 또한 그것을 볼 수 있는 단말기가 있다는 말이니까요. 그러나 항상 이런 혜택 속에 머물러 온 이들에게는 별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것, 내가 일과를 마치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매달 배를 곯지 않을 정도의 수입이 있다는 것 등등이 모두 이미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얻고 있다는 증거가 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탐욕과 이기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여전히 '더 많이, 더 많이'를 외쳐대고 있는 셈입니다.
충분히 받은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나누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아무런 목적 없이 행동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많이 준 이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보살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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