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순수'에서 시작을 합니다.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백지의 상태이죠. 그리고 거기에 많은 것들이 적혀지기 시작합니다. 교육을 단순히 '지식 습득'이라고 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의 토양 자체를 흡수하고 또 각 개별 가정의 분위기를 흡수합니다. 어린 시절의 가장 큰 영향력은 단연코 자신을 키워준 이들에게 받는 영향입니다. (현대에는 이 영향이 부모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아주 어린시절부터 맡겨지는 보육 시설과도 연관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막연히 믿고 맡기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현실을 깨달을 수 있지요. 자신의 아이도 키우기 싫어하는 중에 아무리 돈을 받는다고 아이가 무작정 이뻐보이지는 않는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신앙은 어린 시절의 문화적 토양으로도 다가오고 부모에게 물려받기도 합니다. 이는 분명한 장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전해받는 요소들 가운데 '신앙'이 포함된다는 것은 백지의 소중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여러가지 요소들 가운데에서 앞으로의 인생에 꽤나 중요한 요소 하나를 받는 것이니까요. (물론 언제나 예외는 존재합니다. 부모가 '종교적 환경'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실제 신실한 삶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비춰 보일 때에는 훗날 아이에게 역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즉 종교에 환멸을 느끼는 것이지요.)
처음 들어선 신앙의 여정에서는 '신앙적 배움'이 우선이 됩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습득하는 단계를 살아갑니다. 종교적 용어도 배워야 하고 종교적 관습도 배워야 합니다.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미사를 어떻게 드리는지 성당에 신부님과 수녀님은 누구며 뭐 하는 분인지 등등을 서서히 습득해 나아갑니다. 이런 시기에는 딱히 문제될 요소가 없습니다. 모르는 걸 배우면 되니까요. 신앙적 기초를 쌓는 단계입니다.
어느정도 신앙 안에서 자리를 잡았다 싶을 때에 우리는 '거룩함'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막연한 동경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거룩한 요소에 가까이 다가서고 싶어합니다. 기도를 더 열심히 바쳐보고 싶어하고 신부님이나 수녀님과 친교를 맺어서 그분의 거룩함을 빨아당기고 싶어합니다. 공동체 생활에도 익숙해져서 전에 안하던 봉사도 시작하게 되지요. 이러한 단계를 신앙의 '외적 단계'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신앙이라는 외투를 이것 저것 입어 보는 단계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 이후부터 길이 나뉩니다.
신앙의 본질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만든 신앙적 외투에 빠져서 그것에 열중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때부터 분별력이 상당히 필요해집니다. 분별력이 없으면 머무르지 말아야 할 곳에 머무르게 되고 쓸데 없는 것으로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게 됩니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이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이제 물을 충분히 마셨으면 먹을 것을 찾아 보아야 마땅합니다. 헌데 물이 좋다고 물만 줄구장창 마시다가는 영양실조에 걸려 버리겠지요. 또 부드러운 음식으로 양분을 채웠으면 단단한 음식을 먹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헌데 단단한 음식을 먹으려니 턱에 힘이 들어가다고 부드러운 것만 계속 찾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그는 신앙 안에서 한 자리에 머무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기도행위는 기본적으로는 좋은 것입니다.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데에는 꼭 필요한 것이지요. 하지만 기도의 진정한 의미는 하느님과의 대화이고 그분의 뜻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미 행위가 익숙해져 버렸는데도 계속해서 '행위'를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히려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고 자신의 교만을 드러내려는 지경에까지 이르면 그의 외적인 기도행위는 더는 기도가 아니라 반대로 스스로의 뜻을 강요하는 억지스런 행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밥을 먹었으면 일어나 일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영적 양식도 마찬가지라서 어느정도 먹었으면 그 양식의 힘으로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헌데 게으른 신자들은 계속해서 영적 양식을 먹기만 하려고 합니다. 헌데 그런 이들이 성당 안에서 일을 안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누구보다 열심히 성당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습니다. 성당에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신부님과 어울려 놀고 다른 신자들과 어울려 놀지만, 정작 하느님께서 그에게 바라는 것은 전혀 실천하지 않는 형태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신앙의 기현상을 목격하면서 도리어 세상 사람들은 신앙에 대해서 가졌던 기본적인 흥미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건 '모으는' 게 아니라 '흩어버리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이들이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들어서 서로 경쟁하듯 더 '거룩한 척'을 해 대는 통에 실제 신앙이 필요하고 그 신앙의 온기를 느끼려는 사람이 실망하고 떠나버리는 이상한 집단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신앙은 어떤 형태로 성장하고 있을까요? 나는 나를 쓰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얼마나 이해하고 깨닫고 있을까요? 행여 나는 나의 욕심을 신앙적 행위로 치장해서 과장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일이 너무나 많은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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