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막달레나의 경우는 눈물에 눈이 가려서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통해서 우리는 그분이 그들과 한참을 걸어가는 데에도 알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외적 용모로' 알아보는 일은 쉽지 않았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단순히 그의 외모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행동 습성과 말투를 통해서 그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이 알 수 있도록 구멍난 손과 말을 보여주시고(외견의 유일한 남은 징표) 나아가서 부활하셨음에도 그들 앞에서 구태여 먹을 것을 찾아 물고기를 잡수시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알아보는 일은 여기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실 '영으로' 누군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성령에 힘입은 이들은 '동일한 의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드러납니다.
먼저는 하느님 말씀의 선포와 완성에 힘쓰는 것입니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두번째는 성경에 기반한 복음의 핵심 선포를 가르치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세번째는 진리의 선포, 즉 선교에 대한 노력입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노선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알아볼 수 있는 셈입니다. 사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더이상 당신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서 멀어지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십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보내시는 협조자의 영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앞서의 의지를 담아 주려고 애를 쓰고 계십니다. 우리 주변에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우리는 그의 영을 통해서 그를 움직이고 있는 분을 알아보는 셈입니다.
복음 환호송입니다.
주 예수님, 저희에게 성경을 풀이해 주소서. 저희에게 말씀하실 때 저희 마음이 타오르게 하소서.
댓글
우린 잠시 만난 것이고, 잠시 우리에게 주어진 것 뿐 입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와 같은..' 주님 앞에서 잠시 지나가는 세상 것들에 집착하면 할수록 그분을 알아보는 눈은 점점 멀어집니다. 곁에 있어도 그 존재를 아무렇지 않게 무심히 잊고 살아가는 사람과 눈으로 볼수는 없지만 곁에 계신 분을 느끼며, 무엇이든 그분과 함께해 나가는 사람의 삶은 분명히 다를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에 대한 말씀과 그분을 알리는 수고에 삶 전체를 봉헌하는 이들의 거룩함을 묵상해 봅니다.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이미 준비해 두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너희를 지식과 슬기로 돌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