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볼리비아를 소개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마진우 요셉 신부라고 합니다. 저는 볼리비아라는 나라, 산타 크루즈라는 지역에 2008년 여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습니다. 먼저는 여러분들이 제가 사는 배경인 볼리비아에 대해서 알 수 있도록 간략한 소개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볼리비아는 북쪽에 미국이 있는 아메리카 대륙의 남반구에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 지역을 남아메리카(남미)라고 부르지요. 남아메리카에는 여러 나라가 있는데 그 가운데 마치 심장처럼 끼여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볼리비아이지요. 한국과의 시차는 13시간이고 언어는 스페인어를 씁니다. 주변으로 페루, 칠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이 둘러싸고 있고 따라서 바다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라면 아무리 신선한 해산물과 바다생선회를 먹고 싶어도 구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기껏해야 냉동 연어를 구할 수 있을 뿐이고 그마저도 값이 비싸서 먹기가 힘이 듭니다.
볼리비아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제가 속속들이 다 다녀보진 못했지만 제가 사는 곳 주변만 대충 둘러봐도 우리나라의 70년대 정도에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큰길에서 마차가 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곤 하지요. 하지만 묘한 것이 젊은이들은 벌써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있습니다. 생활이 가난한데 문화적인 수준은 급상승하는 셈이지요. 인터넷 안에는 무슨 정보든지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 양자의 격차가 얼마나 심할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지요.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판자촌인데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문화와 정보는 미국의 헐리우드인 셈이니까요. 거기에서 비롯하는 세대간의 문화적 충돌도 적지 않습니다.
볼리비아의 이런 모습에는 그 배경에 수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남미 전체가 수백년간 유럽의 식민지 상태에 머물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유럽 사람들은 이곳에 침입해 들어와서 원하는 것을 마음껏 약탈했고 또 그들의 씨앗도 뿌려 놓았지요. 그래서 볼리비아는 마치 인종 박물관 같습니다. 피부가 흰 사람, 가무잡잡한 사람, 누런 사람, 검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이지요. 그러니 거기에서 오는 문화적 여파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기본적인 내면의 상태 역시도 유럽의 식민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문화입니다. 이들은 일단 둘러대고 보는 것이지요. 생존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 일단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 복음화 되어야 할 부분 가운데 하나인 셈이지요. 시간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이들의 대표적인 문화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 15분 정도 늦게 오는 것은 약과인 셈이랄까요?
볼리비아 안에도 여러가지 지역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는 서쪽의 고산 지역, 그리고 동쪽의 평야지역이 있습니다. 고산 지역은 해발 고도가 3000미터를 훌쩍 넘어가곤 하지요. 즉, 평소에 생활하는 곳이 백두산 꼭대기보다 높다고 상상해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늘 건조하고 시원한 기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는 선교사들은 대부분 초반 몇 개월간을 서쪽 고산 지역의 코차밤바라고 하는 곳에 있는 어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그곳의 문화와 환경을 체험할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산타크루즈라고 하는 동쪽의 평야지대입니다. 브라질 밀림에서 크게 멀지 않은 곳이라 기본적으로 습하고 더운 지역입니다. 조금은 이 기후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덥고 습할 때에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이곳의 종교는 가톨릭입니다. 인구의 85퍼센트 정도가 가톨릭 신자이지요. 참으로 의아한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렇게나 천주교 신자가 많은데 뭐하러 그곳까지 선교를 가느냐고 의문을 가지실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누구나 수학책을 살 수는 있지만 모두가 그 수학책을 다 풀어내는 것은 아닌 것과 비슷합니다. 이곳의 신자들은 모두 태어나면서 세례를 받지만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인 신심은 있지만 많은 경우에 어긋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 토착 신앙과 맞물린 여러가지 면모들을 보이고 있지요. 그래서 여전히 복음 선포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저의 생활은 한국에서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진행이 됩니다. 미사를 드리고 성사를 집전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지요. 다만 그것을 다른 문화와 다른 언어 안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특이한 상황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바탕은 똑같습니다. 사제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예언직 - 복음을 가르치기, 사제직 - 전례를 거행하기, 왕직 - 하느님과 이웃에게 봉사하기)을 하면서 아직 하느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요.
비록 완전히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결국 같은 하느님의 자녀들이고 모두 저마다 독특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한국이라는 아주 특색있는 문화와 생활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다른나라라고 하면 참으로 머나먼 곳으로 느껴지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참으로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이들을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고 모두에게 똑같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는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이지요.
한 선교사의 사랑 가득한 눈길로 해석된 이곳의 일상의 삶의 모습, 앞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두에게 멀리서 축복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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