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좋은 것입니다. 누군가를 챙겨주고 아껴주고 걱정해주는 것은 좋은 것이지요. 하지만 이 사랑이 거슬릴 때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이 아예 다른 곳을 향해 가 있을 때에 그렇지요.
엄마는 우리들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린 아이 시기를 벗어나면 그 사랑이 거슬리기 시작합니다. 사랑 대신에 ‘간섭’이라는 말을 쓰면서 그 사랑을 벗어나려고 하지요. 상관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 어떤 일에서도 멀어지고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인간 사이에서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도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 사랑에 미흡함이 있을 수 있고 그 미흡함으로 인해서 거슬리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하느님과의 관계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느님 없이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하느님이 없으면 한순간도 버틸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들 속에 ‘어두움’을 형성해 나가면서 하느님을 벗어나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것을 ‘죄’라고 부르지요.
우리는 우리의 자유로 죄를 짓고, 그 죄가 축적되고 누적되면 우리는 어둠의 존재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는 감미롭던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씁쓸한 맛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지상에서 영원할 수 없고 그 어떤 부귀 영화도 마지막 순간이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의 품으로 나아가서 합당한 결과를 받게 되는 것이지요.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마르 9,49)
소금이라는 것은 ‘짠 맛’을 의미하고 그리스도인의 짠 맛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불 소금은 하느님의 타오르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짠 맛을 간직하고 있고 불 소금에 절여지게 된다면 그만한 행복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가 짠 맛을 전혀 알지 못하다가 불 소금을 만나게 되면 그만한 고통스러움도 없을 것입니다.
불 소금을 축복으로 간주하느냐, 자신에게 다가오는 괴로움으로 간주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마르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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