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인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고 정신적인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으며 영적인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습니다. 외적인 아름다움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입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람을 볼 때 느끼는 것이지요. 좋은 그림이나 아름다운 경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적인 아름다움은 좋은 연극을 볼 때 느끼는 감정적인 아름다움, 또 학적으로 깔끔하게 처리된 논문을 볼 때에 느끼는 지적인 기쁨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거의 대부분의 활동을 바로 이러한 것들을 추구하면서 살아가지요. 외모를 가꾸고 지적 수준을 높이고 문화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마지막 아름다움인 영적인 아름다움입니다. 영적인 아름다움은 오직 ‘선’에서 비롯합니다. 물론 다른 여러 표현을 쓸 수도 있겠지요. 사랑, 자유, 정의와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좋은 가치를 마주하면 영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인 아름다움은 모든 것에 깃들 수 있습니다. 외적인 미모를 통해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만 그가 더욱 선량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졌을 때에는 더욱 아름답게 느끼게 됩니다. 반대로 외적으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그의 입에서 더러운 말이 나오고 그가 보이는 행동이 지독히도 천박할 때에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감소시키게 되지요.
우리는 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인 아름다움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이 영적인 아름다움은 우리가 추구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를 가꾸고 다듬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선물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영적인 아름다움의 근본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영적으로 아름다워지는 방법은 무슨 기술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것이 됩니다. 하느님 가장 가까이에서 하느님을 비춰내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공허한 외적 아름다움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옷가지가 낡았더라도 단정하게 차려 입고 사랑을 가지고 입가에 미소를 띄우는 것이 훨씬 더 나은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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