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사랑할 때 왜 ‘정신’만 들어높인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느님은 우리의 온 존재로 사랑해야 하는 분입니다. 그 말은 우리의 모든 감각과 상상력과 지력과 감정과 영혼을 모두 총 동원해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몸으로도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연물을 바라보면서 눈으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고, 귀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거나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지요. 우리는 하느님이 마련하신 모든 지적 영역을 향유하면서도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쁨과 설레임과 두근거림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수도 있지요.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그려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영광을 묘사한 모든 화가들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은 바로 그들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우리는 하느님을 온 존재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고리타분한 신학의 틀에만 가두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학문을 좋아하고 연구하기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신학이 하느님을 배우는 영역이 되겠지만 일자 무식한 할머니라도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면서 그분의 영광에 대해서 묵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훌륭한 교리책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때 왜 ‘정신’만 들어높인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느님은 우리의 온 존재로 사랑해야 하는 분입니다. 그 말은 우리의 모든 감각과 상상력과 지력과 감정과 영혼을 모두 총 동원해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몸으로도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연물을 바라보면서 눈으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고, 귀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거나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지요. 우리는 하느님이 마련하신 모든 지적 영역을 향유하면서도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쁨과 설레임과 두근거림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수도 있지요.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그려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영광을 묘사한 모든 화가들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은 바로 그들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우리는 하느님을 온 존재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고리타분한 신학의 틀에만 가두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학문을 좋아하고 연구하기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신학이 하느님을 배우는 영역이 되겠지만 일자 무식한 할머니라도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면서 그분의 영광에 대해서 묵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훌륭한 교리책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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