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요한 16,27)
요한의 복음은 그냥 읽어 내려가기에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표현이 복잡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흐르고 있는 흐름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사랑하는 이들, 사랑으로 인해서 서로 완전히 하나가 되어 있는 이들은 이 복음을 이해하는 것이 식은 죽 먹기입니다.
아마도 성경학자들은 각 구절의 단어의 기원을 따지고, 히브리어와 희랍어에서의 사용법을 찾고, 또 성경 저자의 시대적 배경과 사상을 연구하고 문체를 따질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한 복음은 그렇게 해서 이해가 되는 복음이 아닙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은 우리가 복음을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는 데에 참으로 소중한 작업이지만 정작 요한 복음이 본질적으로 전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뜨거운 사랑’입니다. 요한 복음은 사랑으로 쓰여진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했던 한 제자가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의 뜨거운 사랑을 묘사한 복음이고, 나아가 그 사랑이 우리 각자에게 전해지는 모습을 드러낸 신비를 담아낸 복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기 힘들어하는 이에게는 수수께끼와 같은 복음이고 반대로 사랑하는 이에게는 너무나 감미롭고 아름다운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진실성과 그 안에 숨겨진 뜨거운 사랑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들어있는 당신의 본질적인 영이 하느님에게서 비롯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야말로 사랑의 본체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닌 것에서 사랑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 사랑을 알게 된 제자는 거부할 수 없이 그 사랑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따라서 그의 내면 역시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차게 되지요.
따라서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와 하느님이 온전히 하나로 연결되게 됩니다. 하느님에게서는 끊임없는 사랑이 쏟아져 나오고 예수님은 그것을 남김없이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남은 것은 우리들이 해야 할 일 뿐입니다.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 뿐이지요.
여러분들이 이 흐름을 온전히 ‘체험적으로’ 이해한다면 요한 복음의 기타 다른 구절들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어딘가에서 사랑이 가로막혀 있다면 요한의 복음은 그대로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움으로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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