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울며 애통해 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요한 16,20)
세상이 기뻐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울며 애통한 일이 됩니다. 세상의 기준과 우리, 즉 하느님의 자녀들의 기준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 안에서의 성공이라는 것은 좋은 직장, 즉 쉽게 일하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얻고 아름다운 배우자를 얻고, 명예를 얻는 것 등등입니다. 그런 일을 성취한 이들을 두고 사람들은 부러워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 안에서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물건을 누리는 것이기보다는 그에 관한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자가용이 없으면 불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우리는 자동차세를 내거나 수리를 하거나 유류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세상 안에서 얻게 되는 것에는 반드시 그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게 됩니다.
외모가 아름다운 배우자를 얻는 것은 그만큼 유혹이 많은 배우자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리 배우자가 충실하다 하더라도 주변에 모여드는 추악한 유혹의 손길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는 셈입니다.
명예를 얻는다는 것은 반대로 그 명예에 구속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명예라는 것이 자신의 진실한 본질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닌 주변에서 덧붙여진 것이면 언제라도 빼앗길 위험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식적인 일을 많이 해야 하고 결국 위선자가 되기 십상입니다.
세상 안에서 무언가를 얻는다는 것, 즉 세상이 기뻐하는 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영적으로는 오히려 수많은 걱정과 위험에 처하는 일이 됩니다. 이 표현이 예수님에게 이르러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것이 됩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처형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시기에 가득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된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자신들의 죄악을 자유롭게 계속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고 따라서 세상은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슬픔과 근심은 기쁨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당신의 외아들을 비극의 대상으로 놓아두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무언가를 잃으면, 즉 세상의 비극의 대상이 되면 근심하곤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모든 것을 그 시작부터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며 당신의 자녀들에게 기쁨을 돌려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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