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은 사랑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도시 빈민가라서 부자들이 오지 않는 곳입니다. 부자들은 겁이 많아서 가난한 사람들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들에게서 더러운 것이 묻을까 걱정하고 행여 이상한 병이라도 옮을까 주의하며 가난한 이들을 기본적인 교양도 없는 자신들이 지닌 재물에 탐을 내는 도둑이나 강도로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가난한 이들이 가난해서 도둑과 강도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선입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한 도둑과 강도는 없는 이의 것을 착취하고도 나눌 줄 모르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진짜 도둑과 강도는 오히려 부자들 사이에 더 많습니다.
우리 동네로 오는 길에는 아주 고급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곳이지요. 헌데 그 곳에서 망자를 위하여 장례를 집전해 줄 사제를 물색하다가 도시에서는 찾지 못하고(다들 귀찮아서 바쁜 척을 하니까요.) 결국 제가 사는 본당까지 찾아와서 사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서 장례예식을 거행해 주었지요. 헌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제가 하는 말을 유심히 들으면서 나름 깊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지요.
어느 날, 그 사람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어느 부유한 가정이 하나 있는데 제가 가서 집 축복식도 해 주고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도 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좀 의아하긴 했지만 가보기로 했습니다. 알고보니 한 5살 정도 된 여자 아이가 죽었는데 그 가족들을 위로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지요. 집은 보안업체에서 경비를 단단히 하고 있는 아주 값비싼 부자 마을이었습니다. 집도 2층 집이었지요. 헌데 아이가 집안에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놀다가 그만 작동하는 엘리베이터에 목이 걸려 죽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열심히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구성에 대해서, 영혼의 존재와 그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 주었지요. 그리고 그 딸아이는 부모님의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랐고 별다른 죄 없이 세상을 떠나갔기에 지금은 하느님 가까이에서 잘 쉬고 있을 거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비록 그 육신은 여기 남겨 놓고 갔지만 지금은 천상에서 작은 천사가 되어 지내고 있을 거라고 했지요.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아직도 남아있는 아이가 부모님의 슬픔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이의 부모님은 사랑스러운 어린 딸아이를 잃은 상황에서 제가 가르치는 영적인 것들을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빨아당겼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그 부모들이 제 본당에 주일미사를 드리러 나타났습니다. 딸아이를 위해서 미사를 봉헌하기도 하고 또 제 강론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지요. 그들은 제 본당의 초라함에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미사에 나오는 것은 안락함을 누리려고 나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집 근처에 얼마든지 넓고 편안한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좋은 본당이 있음에도 그들은 굳이 차를 몰고 먼 길을 달려서 제가 있는 가난한 본당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먼 도시로 이사를 가서 오지는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아이 아빠가 연락을 해서 그 동안에 다른 아이 하나가 생겼는데 세례를 받고 싶다고 요청해 왔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선입견을 많이 가지고 살고 이 선입견은 사람들 사이의 ‘벽’으로 작용합니다. 인종에 대한 선입견, 부와 가난에 대한 선입견, 신분에 대한 선입견, 지역에 따른 선입견 등등 엄청나게 많은 선입견들에 사로잡혀 살아가곤 하지요. 그만큼 벽도 많은 셈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격차입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차별은 외적인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마음의 상태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바꾸면 벽도 허물어지게 됩니다. 벽을 세운 쪽에서 마음을 바로 세워 벽을 무너뜨리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처음 창조하시면서 벽 같은 것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이 벽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이기심’이 자신이 지닌 것을 보호하려고 타인을 배척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것입니다. 탐욕의 벽과 교만의 벽이지요. 하느님은 그 벽을 없애기 위해 무던히 애쓰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요. 천상의 아버지의 외아들이 사람이 되어 사람들에게 봉사를 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가장 드높을 수 있는 벽이 바로 예수님에 의해서 무너져 내린 것이지요. 그리고 그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당신이 하신 일과 똑같은 일을 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절름발이를 걷게 하라고 하시지요. 즉, 내면이 공허한 이들에게 다가가서 희망을 주고, 참된 것 진실한 것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보게 하고, 자신의 약함과 오류로 일상 안에서 이런 저런 일에 부딪히며 걸어가는 절름발이들에게 거룩한 가르침을 주어 똑바로 걸어가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그러한 것들 가운데 가장 핵심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모든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하지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부자도 가난한 이도, 노인도 어린 아이도, 신분이 높은 이도 낮은 이도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하느님과 엮어 주고, 사랑은 우리 사이를 강하게 매듭지어 줍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진정한 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남은 생애 동안 많이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