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사도 17,27)
수많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찾습니다. 자신이 찾는 것을 뚜렷이 알고 찾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추구하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찾다가 얻어 만나는 이도 있고 전혀 엉뚱한 것을 향한 추구로 변질되는 이도 있습니다.
사실 인간의 마음은 보다 참된 것, 보다 진실된 것을 찾습니다. 수많은 정보를 접하면서도 그 가운데에서 보다 진실되고 참된 것을 분별하려고 노력하지요. 물론 그렇게 하지 않고 지극히 피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간은 그렇게 더듬어 찾다가 하느님을 얻어 만나기도 합니다. 더듬어 찾는 이들은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겠지만 자신이 찾게 된 것을 더욱 소중히 여길 줄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치 베들레헴에서 동네 주민들이 전혀 찾지 않던 것, 헤로데왕이 전혀 찾지 않던 아기를 멀리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찾아내고 경배한 것과 비슷합니다.
선교라는 것, 복음화라는 것은 인간의 이 근본적인 추구와 하느님 사이의 연결을 시켜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교라는 것이 종교적인 외적 껍데기를 덮어 씌우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기도의 형식과 의무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기도의 필요성을 가르쳐야 하고 언제나 어디에서나 하느님을 기억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과거의 방식에 집착하곤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기도문을 외우는 것, 그리고 형식을 열심히 준수하는 것으로 자신이 훌륭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곤 하지요. 훌륭하기는 커녕 더욱 교만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먼 훗날 더듬어 하느님을 찾은 이들이 언제나 하느님 가장 가까이 머물러 있으면서도 하느님을 찾지 못한 이들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르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가장 가까이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의 외아들을 모시고 그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가운제 적지 안은 이들은 여전히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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