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살면서 자칫 착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주변만 바라보고는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언어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런 착각은 더욱 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마치 어린이가 세금 내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차 할부금을 값을 걱정 없이 집에 살면서 안정감을 느끼고 차를 타고 다니면서 좋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겉으로 보이는 것 너머의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한 것들은 언젠가는 닥쳐올 현실인 것이지요. 그래서 언제나 현실감각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당에서 언제나 싹싹하고 다정다감해 보이며, 한인 사제들이 필요한 것을 늘 챙겨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친구에 대한 첫인상은 너무나 긍정적인 것이었지요. 한인 사제들이 보기에 그 아이는 아무런 흠도 티도 없는 열성적이고 적극적인 아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였지요. 그 아이는 보이는 데에서만 그렇게 활동하고 다닌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원하는 것이 뚜렷한 아이였습니다. 그것은 권력과 재력과의 밀착이었지요. 그리고 그로 인한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는 것도 한 몫 했습니다. 한인 사제들이 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 한인 사제들이 하는 활동들이 꽤나 대외적이라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그 아이는 한인 사제들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이 아이의 본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복사단 활동을 같이 하던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그 아이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고, 또 필요하지만 자신에게 성가시거나 귀찮은 모임이 있을 때에 그 아이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보이지 않았습니다. 반면 재미나고 신나는 모임에는 언제든지 빠지지 않았지요. 자신의 이름이 드러날 만한 일이면 나서서 하다가도 청소라던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 활동 앞에서는 도망가 버리곤 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본색은 드러나고 말았지요. 그러나 여전히 기회가 닿는 대로 새로 오는 신부님 앞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너도 나도 그 첫인상에 속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오래 함께 지내본 신부님은 그 아이의 본모습을 알고 주의하라고 하고 그러한 것들을 전혀 모르는 새로운 신부님은 그 아이를 옹호하고 나서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게 되는 것입니다. 즉 그 아이로 인해서 공동체의 분열도 가중되는 것이지요. 자신이 지금 당장 외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온전한 실제라고 믿으니 상대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셈입니다.
이처럼 선교사가 현실의 굳건한 바탕을 딛고 살아가지 않으면 뜬구름 잡는 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크게 상처를 받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뒷통수에다 대고 온갖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선교지에 대한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름다운 선교의 이미지를 품고 왔다가 선교지의 현실에 혼쭐이 나고는 온통 부정적인 시선만을 간직하고 떠나는 선교사들도 적지 않습니다.
신앙인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 안에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을 온전히 다 챙긴 후에 남는 시간으로 여가활동처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하고 그 신앙이 가리키는 길이라는 것을 올바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가신 길, 수난과 죽음, 그리고 영광의 부활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러나 많은 신앙인들은 이전의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막연히 부활의 영광만을 탐내면서 이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실제로 그 길을 마주해야 할 때에 용기를 잃고 도망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선교지는 마냥 사람들과 웃음꽃을 피우는 곳이 아니라 때로는 신분증을 만들기 위해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수속 과정을 거치고 기다리고 하는 고생을 해야 하고, 또 본당에 산적해 있는 실제적인 현안들을 고심해서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애쓰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장나는 차도 고쳐야 하고, 밀린 수도세도 내어야 하고, 화장실이 막히면 뚫기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니 우리는 때로 가족 안에서 불화도 겪고, 반모임에서 엉뚱한 모습의 반장을 만나기도 하고, 성직자와 수도자의 부족한 모습에 실망을 하기도 하면서도 하느님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다져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이렇게 외적인 껍데기를 벗어나 그 안의 현실을 올바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참된 신앙의 여정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는 셈이지요. 선교지의 그 험난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이 생활해 나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장 깊은 곳에 신앙을 꾸준히 간직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는 일상의 선교사인 여러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가장 근본에 신앙을 지니고 일상을 똑바로 직시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신앙이라는 것은 장및빛 환상이 아닙니다. 엄연한 현실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남편, 오류가 많은 아내, 이런 저런 단점이 가득한 가족들과 생활하면서 일상 안에서 다가오는 이런 저런 시련 거리들을 함께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인 것입니다. 또한 신앙 공동체라고 해서 완전할 수도 없습니다. 사제는 사제대로, 수도자는 수도자대로, 신자들은 신자들대로 저마다의 오류와 부족함 속에서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걸어가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활의 영광은 오직 수난과 십자가의 희생 뒤에야 다가오는 것입니다. 영광의 찬란한 환상을 꿈꾸느라 수난과 십자가를 저버려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미리 아시고 당신의 제자들에게 충분한 사전 경고를 해 주셨습니다.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지요. 신앙은 현실입니다. 신앙은 꿈꾸는 게 아니라 엄연히 구체적인 삶으로 살아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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