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하지 않는 의사를 의사라 할 수 없고, 가르치지 않는 교사를 교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타이틀만 지니고 있다고, 그저 학식만 따고 있다고 해서 붙여지는 칭호는 본질을 망각하고 왜곡한 것이 됩니다.
신앙인들은 ‘믿기’ 때문에 신앙인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이 세례만 받았다고 해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살아가는 내적 결심이고 구체적인 외적 실천의 행위입니다. 가난한 이 안에 살아 숨쉬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이는 그들의 외적인 추함에 그들을 기피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손길을 믿는 이는 자신의 내적인 그런 믿음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이런 믿음을 구체적으로 살아가기에 신앙인이 됩니다. 그래서 신앙인의 생활은 세상의 평범한 다른 이들의 삶과 남다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좀처럼 하지 않으려는 일을 신앙인들은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 하지만 신앙인들은 가진 것을 내어 놓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비천해지는 자리를 기피하려 하지만 신앙인들은 겸손과 순명이라는 이름으로 기꺼이 그런 일들을 맡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인들의 믿음을 드러내는 외적인 표지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신앙인들이 ‘짠 맛’을 지니고 있는 이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신앙인들에 대해서 은근한 매력을 지니게 되는 것, 그것은 바로 신앙인들이 이러한 짠 맛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신앙인’이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음에도 이 세상에는 이러한 이들이 있습니다. 그저 신앙인의 타이틀만 받아 두고는 실제로는 믿음의 생활을 실천하지 않는 신앙인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잇속에 밝고 자신을 희생해서 남들을 도우려 하지 않는 신앙인들입니다. 주일 미사나 겨우 나오고 그마저도 얼른 도망쳐 버리는 개인주의적인 신앙관에 사로잡힌 이들이지요. 이들은 언뜻 믿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밖에 믿지 않는 이들이며 언제라도 자신의 욕구와 하느님의 뜻이 상충될 때에는 거침없이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는 이들이 됩니다.
돈이 자신의 많은 것을 보장해 준다고 여전히 믿는 그들은 돈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 돈 때문에 숱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고 예비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진실을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희망을 두지 않고 오직 보이는 세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도리어 장님이 되어 버린 이들이지요.
신앙인은 믿기 때문에 신앙인입니다. 참으로 단순하고 명료한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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