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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세상에 거의 모든 성인들은 지상에 살아있는 동안 그 가치를 올바로 평가받은 적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그들을 곡해하기 일쑤였고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며 비난하고 또 나아가 그들을 파괴하려는 시도까지 일삼았다.

그러나 그들을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진가를 알아본 이들은 그들을 보살피려고 애를 썼다. 그들은 미약한 힘이나마 성인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했고 도우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도움은 세상적인 시선으로는 지극히 나약한 힘일 뿐이었다.

기도라는 수단은 세상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너무나도 하찮은 것이었다. 그들은 기도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고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들은 기도로써 서로를 도왔다. 기도는 거리도 상관없고 물리적인 수단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거룩한 이들이 서로를 돕기 위해서는 최고의 수단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언제나 부족함이 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은 하느님께서 채워주시는 부분이다. 하느님께서는 그 부족함을 기꺼이 메꾸어 주시지만 그것을 무턱대고 우리에게 밀어 넣으시지는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청하기를 기다리신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적인 필요만을 공허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굶어 죽는 형제를 소홀히 하는 내가 사업 자금 천만원이 부족하다고 아무리 청한들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리가 없는 셈이다. 먼저는 사랑하는 이를 돌보는 마음을 갖추어야 순리에 맞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탐욕은 우리를 눈멀게 하고 우리 자신의 고통과 부족에만 집중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눈을 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인을 만나더라도 그를 돕기는 커녕 그가 하는 일을 사사건건 감시하고 또 심지어는 그를 가로막기도 하는 것이다.

눈을 떠야 한다고 부르짖는다고 눈이 떠지지는 않는다. 본인 스스로 뜨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죄악의 신비가 존재한다. 빛을 비추어도 그 빛을 피해 버리고 숨어들기 시작하면 빛도 소용없는 법이다. 하느님에게서도 신비를 찾을 수 있짐나 인간의 의지가 작용하는 부분도 역시 ‘신비’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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