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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벽과 완성




결벽증에 걸린 사람과 평범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고 책상 청소를 시켜 봅시다. 결벽증에 걸린 사람은 구석에 생겨난 책상의 흠집을 메우기 위해서 씻고 닦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예 칠을 새로 하겠다며 새로 페인트를 주문하고 칠하는 데에 필요한 에어 브러시와 컴프레서를 사느라 하루 온종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반면 다른 이는 책상 위에 놓인 것들을 한쪽으로 몰아놓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바로 시작합니다.


'완성'이라는 말은 결벽증적인 완벽과는 다른 말입니다. 완성은 본래의 목적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런 시야로 율법과 현대의 교리체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일 미사에 나오느냐 빠지느냐? 이를 결벽증적으로 집착하면 다름과 같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언제까지 오면 유효한 미사인가? 언제 나가는 것이 허용되는가? 미사에서 동작 가운데 이런 저런 것을 빠뜨리면 미사는 유효한가? 미사보를 안써도 되는가? 써야만 하는가? 하지만 완성이라는 입장에서 바라보면 보다 심층적인 차원을 살펴보게 됩니다.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가 아닌가? 내가 미사에 나오는 행위는 그 사랑과 관련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신심이 깊은 할머니가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미사를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할머니는 주일 미사에 빠진 대죄를 저지른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언제든 나으면 하느님에게 감사 드리기 위해서, 아니 하느님이 보고 싶어서 미사에 나오실 것입니다. 반대로 집이 성당 코앞인데 빈둥거리다가 미사에 조금 늦었다면 어느 시점을 바탕으로 미사는 유효하다는 규정을 근거로 이 사람은 미사에 늦지 않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사람은 미사에 오기 전부터 미사에 늦은 마음을 지니고 있는 셈입니다.


하느님은 숨어 있는 것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율법은 '완성'될 것입니다. 어떤 음식은 먹어라 먹지 말아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법입니다. 계명들을 지키고 어기는 것은 그 계명에 집착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계명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바를 완성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율법이 의도하는 하느님의 뜻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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