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효율성’이라는 것에 집중해 왔습니다. 그래서 뭘 하든 이 효율성, 즉 작은 노력으로 큰 수확을 얻는 것을 즐기지요.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아무리 효율성이 극대화 되더라도 인간의 내적 영역마저도 효율성에 입각해서 개발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온통 이 주제에 집중해 있으니 신앙 안에서도 이 효율성은 실제로 적용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도를 해야 하는데 따로 기도할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으니(솔직히 말하면 따로 기도할 시간을 내기는 싫으니) 다른 일을 하면서 기도해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식의 기도를 하면 할수록 기도는 건성으로 변하게 되지요. 전혀 마음을 두지 않고 기도를 하는 데에 익숙해지고 그저 기도의 횟수만이 그 결과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신앙 안에는 효율성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신앙은 오직 우리가 진심으로 마음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가 생겨납니다. 한 레지오 단원이 레지오 모임에서 드러내기 위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묵주기도 20단을 바치는 것보다 차라리 한 어린아이가 자기 전에 성호를 긋고 하느님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아빠와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백배 천배 더 나은 법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기도 안에 사랑이라는 것, 신앙이라는 것을 섞어 넣어 자신의 소박한 기도를 한없이 아름답게 만들었지만 그 레지오 단원의 기도는 가식과 위선과 기도 자체에 대한 혐오를 섞어 넣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 하느님의 것을 함부로 대하고 있는 셈이지요.
기도에는 효율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앙적인 것에는 효율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쁘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억지로 바치는 기도는 하느님께서 즐기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숨은 것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백만장자이고 누가 나에게 선물을 주는데 엄청 비싼 무언가를 준다고 내가 기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가 진정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는지, 아니면 주기 싫은데 억지로 주는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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