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너무나 간단한 일입니다. 자극을 주면 됩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 반응도 없을 것이고 산 사람은 어떻게든 반응을 하겠지요. 그럼 죽은 영혼과 산 영혼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육체의 경우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비슷합니다. 그에게 영적인 자극, 구원에로의 초대가 왔을 때에 죽은 영혼은 반응이 없을 것입니다. 반면 살아있는 영혼은 반응을 하겠지요.
죽은 믿음과 산 믿음을 구분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요? 야고보서는 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는 바를 실천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잠깐 이전으로 돌아가 봅시다. 죽은 영혼은 움직이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죽은 영혼은 '돈을 벌기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움직입니다. 반면 '신앙을 북돋우기 위해서', '참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실천이라는 것도 유념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이라는 이름을 달고 하는 모든 활동이 믿음의 실천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레지오를 열심히 할 수 있지만 사실상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계모임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레지오 모임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구성원 사이의 친교만 열심히 다지면서 정작 성모님의 의중은 전혀 상관없이 돌아가는 레지오라면 그것은 믿음의 실천을 하고 있는 레지오가 아니게 됩니다.
본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엄청 활성화되어 있는 것 같고 열심히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본당이 있을 수 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이 돌아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건축일을 하는 사목위원이 뒷돈을 욕심내며 본당의 커다란 프로젝트를 무리하게 진행시키려고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신앙의 환경을 이용해먹고 있는 것이지 진정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실천이라는 것은 열심해 보이는 외적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실천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에 깨어 있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에 바람직한 것을 실행하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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