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마태 19,27)
사도들은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들의 내면에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예수님을 따랐으니 그에 상응하는 상급이 있을 것이고, 또 철저하게 내어 놓았으니 그래도 다른 이들보다 많이 돌아오는 것이 있겠노라고 기대를 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하신 분이라서 그들의 기대에 대답해 주십니다. 엄청난 것들을 마구마구 약속해 주시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약속하시는 것들 안에는 숨은 뜻이 존재합니다.
1) 너희들이 받을 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제자들이 받을 상은 이 세상에서 받을 대상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새 세상’을 언급하셨습니다. 물론 제자들의 이해의 범주로 그 새 세상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커다란 기적을 보이시고 왕위를 받게 되는 날로 착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이 말하는 새 세상의 도래는 당신의 십자가 상의 죽음으로 다가오는 것이었고 제자들이 지상에 발을 붙이고 있는 동안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2) 너희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자신들이 예수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자신들도 한 몫을 얻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부류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예수님은 첫째와 꼴찌의 변화로서 언급을 하십니다. 우리는 첫째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많이 알아야 하고 많이 지녀야 하고 명예를 얻어야 하는 등등의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바라보시는 관점은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어놓은 것은 약속이지만 그 약속을 올바로 지키고 따르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이 됩니다. 즉, 예수님은 주면서도 주지 않은 셈이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이들에게 달린 문제이니까요. 예수님에게 이 엄청난 약속의 말을 들은 제자들 가운데에서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을 팔아넘긴 배신자가 되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혹시 모르는 일이지요, 어쩌면 그는 예수님이 이런 약속을 하는 순간에 자신이야말로 가장 이 약속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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